
국가보훈처가 김일성 외삼촌 강진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벌어진 논란의 지형이 희한하다. 김일성 일가에 왜 훈장을 수여했냐고 몰아붙인 쪽은 야권이고, “서훈에 연좌제가 적용될 수 없다”고 방어한 박승춘 보훈처장은 보수의 아이콘이다. 참여정부 시절 여운형, 장지락, 주세죽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건국훈장을 받았을 때 보수단체들이 반발했던 때와는 공수(攻守)가 정반대로 뒤바뀐 구도다.
애초 이 문제를 제기한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박승춘 보훈처장이 자격 미달의 심사위원을 꾸려서 멋 모르고 김일성 외삼촌에 훈장을 준 뒤에 이를 쉬쉬하려 했던 점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연좌제로 시비를 거는 모양새가 됐다. 반대로 김일성 외삼촌인 줄도 모르고 추서했던 보훈처는 자기 방어를 하다 보니 연좌제를 반대하며 김일성 일가의 독립운동 공적을 옹호하는 쪽이 된 것이다. 싸우다 보니 서로 다른 진영의 지평 위에 서 있는 꼴이 됐는데, 코미디에서 많이 보던 풍경 아닌가. 이 코믹한 상황에서 보훈처는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서훈 취소를 검토하겠다며 본색을 드러냈다. 울고 싶은 데 뺨 맞은 셈 친 것이다.
이런 상황극을 제거하고 보면, 문제의 본질엔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에게 훈장을 줄 수 있느냐가 자리잡고 있다. 강진석에게 훈장을 준다면 김형직은 왜 못 주냐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사실 보훈처가 ‘연좌제 반대’ 운운하다가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린 것도 김형직 서훈 건 때문이고, 야권의 스텝이 꼬인 것도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면이 없지 않다.
보훈처가 애초 밝혔던, 그러나 그들의 본심이 아니라는 게 하루 만에 드러난, ‘서훈에 연좌제가 적용될 수 없다’는 방침을 적용하면 김형직도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 받을 수 있다. 와다 하루키에 따르면, 평양 시내 미션 스쿨인 숭실중학교를 다닌 김형직은 기독교신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 민족주의단체 조선국민회의에 참여했다가 옥고도 치렀다. 32세 때 인 1926년 사망했으므로 후일 김일성의 행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헌법 제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이를 단순 적용한다면 김형직도 서훈 대상이 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김형직에게 훈장을 줄 경우 김형직을 ‘민족해방운동의 아버지’라고 과대평가하면서 종교적 대상으로까지 숭배하는 북한의 주장에 장단을 맞춰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상존한다. 그의 뜻은 아니었더라도, 북한에서 김씨 왕조의 백두혈통으로 신화화한 김형직의 지위를 생각하면 그에게 훈장을 주는 것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가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질곡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씨 일가에 대한 서훈 문제에는 연좌제와는 다른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달리 보면 김씨 일가의 공적을 공적 그대로 인정해 우리가 훈장을 주는 것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넘는 과정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장하고 통일 시대의 디딤돌을 놓은 작업일 수 있고, 남북간 정서적 갈등을 극복하는 일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결정이 단기간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 특히나 북한이 잇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발사 등 핵무기 무장의 길로 내달려 남북 대화의 길이 꽉 막힌 상황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도 아니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의 여러 측면을 내포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서훈 문제가 지금껏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보훈처가 2010년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과 2012년 외삼촌 강진석을 추서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김일성 일가인줄도 모르고 훈장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박승춘 보훈처장이 “연좌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가 아무 해명 없이 하루 만에 발을 뺀 것도 뻔뻔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김씨 일가 서훈 문제가 박 처장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제기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문제가 한낱 박 처장의 퇴진용 압박 카드로 소비될 성질이 아니다.
송용창 정치부 차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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