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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상태 회사 10곳 인수 후
매출 조작해 거액 가로채
페이퍼컴퍼니를 인수해 매출이 발생한 것처럼 꾸민 뒤 수백억원의 대출금을 받아 가로챈 사기범과 브로커, 은행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서봉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사기 등 혐의로 안모(41)씨 등 대출사기범과 브로커 18명을 구속기소하고, 차모(58)씨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대출 승인을 대가로 금품ㆍ향응을 받은 시중은행 지점장과 부지점장 3명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안씨 등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사실상 폐업 상태인 페이퍼컴퍼니 10개를 각각 5,000만원에서 1억원에 인수해 매출을 조작한 뒤 8개 은행으로부터 170억원을 대출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세무회계 법인에 의뢰해 허위 재무제표를 만든 뒤 바지사장을 앉히고 세무서에 허위 매출 신고를 하는 방법을 동원, 페이퍼컴퍼니를 건실한 회사로 위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씨 일당은 법정신고기한이 지난 후에도 과세표준신고서를 낼 수 있도록 한 ‘기한 후 신고’ 제도를 악용해 매출실적을 조작하는 수법을 썼다. 기한 후 신고를 신청하면 세무서가 2개월 뒤 세금납부고지서를 발송하는데, 납부기한까지 실제로 돈을 내지 않아도 대출에 필요한 표준재무제표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수출업자의 부가가치세 부담을 덜어주려 마련된 영세율제도도 대출사기에 이용됐다. 해당 제도가 적용되는 수출실적은 세금계산서 발급 의무가 면제돼 세무서 신고 시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안씨 등은 이 점을 간파하고 발생하지도 않은 2,3년치 매출 실적을 모두 영세율 적용 대상인 수출실적으로 꾸며 신고했다.
조사 결과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지점장 등 시중은행 임직원 3명은 대출을 해주면서 1,850만~5억8,000만원을 받아 챙겨 범행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은행 지점장 A씨는 10여개 페이퍼컴퍼니에 대출을 해준 뒤 연체가 누적되면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상황에 처하자 새 페이퍼컴퍼니에 기존 회사의 연체금을 변제하게 하는 일종의 ‘돌려막기’ 대출을 승인해 주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주로 재무제표를 위조한 기존 범행과 달리 이번 건은 세무서에 허위로 매출을 신고하고 제1금융권을 통해 불법 대출을 받은 신종 사기 수법”이라며 “세무서와 세관, 금융기관이 대출을 승인해 줄 때 해당기업의 매출이 실제 있었는지 등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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