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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 정보화시대 예견한 통찰력... 최고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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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 정보화시대 예견한 통찰력... 최고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별세

입력
2016.06.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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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연설 중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AP연합뉴스
1998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연설 중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AP연합뉴스

“종교, 국가, 가족 등 인류의 오랜 뿌리들이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기반을 찾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시대의 불안을 포착해 인류의 미래 방향을 제시한 세계적 권위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벨에어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88세.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1970), ‘제3의 물결’(1980), ‘권력이동’(1990) 등 10여권의 굵직한 저작을 통해 인류 사회가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지식ㆍ정보 사회로 이동할 것을 예견했다. 특히 전세계 50여개국에서 출간된 ‘미래의 충격’은 토플러가 세계적 석학으로 발돋움하는 기점이 됐다. 그는 전세계 성장 붐이 일어나던 1960년대에 인류의 삶이 급속도로 변하는 데서 야기된 불안감을 포착하고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플러는 이 책에서 ‘지식의 과부하’‘권력 이동’‘디지털혁명’등의 표현을 탄생시켰다. 미국 주간 타임은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을 통해 “향후 모든 미래학자가 따라야 할 기준을 정립했다”고 평가했다.

정치, 사회를 넘나든 토플러의 조언은 특히 경제ㆍ산업 변화에 있어 정확한 통찰력을 발휘했다. 과학기술에 의한 새로운 문명을 조명한 ‘제3의 물결’은 중국 경제 개혁 프로그램의 토대가 됐다. 구소련의 개혁ㆍ개방을 주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또한 토플러를 멘토로 삼아 소련의 첫 비정부기구에 그를 포함했다. 토플러는 그 외에도 복제 기술의 탄생,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의 보급 등을 일찌감치 예견하며 산업 전망의 지표가 돼 왔다.

20, 21세기를 꿰뚫어 본 토플러의 혜안은 분야를 막론한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192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토플러는 졸업 후 클리블랜드 알루미늄 제조 공장에서 5년 간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는 1998년 인터뷰에서 “공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지능 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후 토플러는 언론인으로 변신해 포천 등에 정치, 경제, 군사 분야 기사를 쓰면서 자본주의 발달과 관련된 주제로 저작 활동을 시작했다.

토플러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토플러를 초청해 만났다. 토플러가 부인과 함께 설립한 컨설팅 기업 ‘토플러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남북 평화 통일을 위한 재단 설립에 관해 토플러에게 자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류는 후에도 계속돼 토플러가 2001년 한국에 정보통신(IT) 산업과 생물공학(BT)의 융합 발전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21세기 한국 비전’ 보고서로 이어졌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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