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부터 정부는 매년 초등학교 6학년 여성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도록 하는 정책을 개시하였다. 올해는 2003년에서 2004년 사이에 출생한 여성청소년 47만명이 접종대상이라고 한다. 그 후 일주일 만에 전국에서 8,500명이 접종을 받으면서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의 공식입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은 잦아들지 않고 있고, 국가백신사업으로 지정되게 된 배경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이어지는 중이다.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한 입장은 매우 양극단으로 나타난다. 의료계의 입장은 사소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나, 암을 예방해준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으므로 백신의 효과를 누리기에 가장 적절한 연령을 놓치지 말고 얼른 접종을 받으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불안과 함께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윤추구 행위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표출하면서 의료계와 국가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불신과 불안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은 접종이 시작된 이후 SNS상에 유포된 백신 관련 괴담이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확인이 된다.
이러한 논란에 마주하여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성의 건강권은 백신에 대한 찬반의 문제라는 협소한 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자궁경부암백신은 미국에서 개발되던 당시부터 적극적으로 여성 건강에 대한 페미니즘의 언어를 차용해 왔고, 반대하는 쪽도 여성의 입장에서 몸에 대해 이루어지는 국가적·의료적 개입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양쪽 모두가 여성의 몸과 건강의 권리를 내세우는 상황이기에, 겉으로 드러난 수사학적 표현을 넘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양측이 접종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주목해 보자. 무엇보다 정부나 의료계가 만 12세 여성성별을 가진 개인들에 대해 성적인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이 눈길을 끈다. 언뜻 보면 최근 들어 성 경험 개시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항체의 효과적 형성을 위해 성 경험 이전에 접종을 하려면 만 12세 정도가 적당하다는 주장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제까지 10대 중후반에 대해서조차 현실적으로 이들이 성을 경험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러니 정부가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백신 사업을 앞두고서 갑자기 청소년 성에 대해 현실적이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의혹이 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청소년, 특히 여성청소년의 성 경험을 인정하는 것은 이들이 소비자로서 가치가 있을 때만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을 제기하고 국가접종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만 12세 연령대를 여아, 즉 아동으로 호명하면서 접종대상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의료계나 정부가 여성청소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이들은 동시에 백신에 대한 정보의 부족과 판단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결국 여성의 자기 결정능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가 피임약 재분류 안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건강권보다는 의약계의 이해관계를 앞세웠듯이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이 소비자나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성적 주체로서나 시민적 주체로서 존중 받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게 현실이다. 백신을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집중된 논의는 과연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방해한다. 성, 피임, 출산, 임신중절 등 생식과 관련된 전 과정에서 여성들이 연령이나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주체로서 존중받을 때만이, 그리고 경제적 능력에 따른 차별 없이 의료에 접근할 수 있을 때만이 여성들의 건강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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