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안보에도 악영향
“국방은 계속 나토가 책임”주장은 단견
EU와 나토는 중복ㆍ교차하며 상호 의존적
EU와 테러 등 정보교환도 기대 힘들어
신 양극체제에도 큰 변화
현 정세는 나토가 세계로 확대된 ‘파토’와
中ㆍ러ㆍ구소 공화국의 모임인 ‘SCO’가 대립
英이 러 견제 못하게 되면 SCO 세력 강해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발언 가운데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그는 국민투표 한 달 전 “영국은 유럽에 등을 돌렸을 때마다 후회해 왔다(Every time Britain turned its back on Europe, it had come to regret it)”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브렉시트 찬성 투표 결과에 대해 보수당과 노동당이 당혹해 하며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재투표를 청원한 수가 약 400만명이나 되는 것을 보면 영국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캐머런 총리는 또한 투표 며칠 전에는 이렇게 강조했다. “영국은 EU 내에서 더 안전하고 더 강하다(The UK is safer and stronger in the EU).” 이 같은 발언은 안보 문제와 직결된 것이라 시사점이 크다. 브렉시트는 단기적으로는 세계 증시에서 3,5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가 증발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제 안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서유럽동맹(WEU)에서 공동안보 및 국방정책(CSDP)까지 진전
지난 25년간 EU는 공동 외교안보 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을 공들여 진전시켜왔다. EU의 출발도 실은 두 차례 전쟁을 치른 유럽에서 더 이상 갈등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최근에만 해도 EU는 서류상의 공동 외교안보 정책이 아닌, 이란의 핵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공동으로 실천해왔다. 영국의 전 외무장관 사이먼 프레이져 경은 “브렉시트는 세계에서 영국의 역할을 감소시킬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비록 영국이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가운데 하나로서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 경제는 물론 안보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전과는 달라질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측은 국방 문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책임져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의 안보와 국방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단편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유럽의 안보와 국방 문제는 3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개별 국가 단계, 둘째 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EU 차원의 공동 안보 및 방위정책 단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3단계가 서로 중복되기도 하고 교차되어 상호의존적인 특징을 갖는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공동 방위 정책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48년 영국,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이 브뤼셀 조약에 서명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조약은 상호 방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1990년대 말까지 이어져 온 서유럽동맹(WEU)의 근간이 되었다. 서유럽동맹은 나토와 더불어 유럽에서 안보국방에 관한 자문과 대화 통로로서 역할을 했다. 1999년에는 EU가 외교 문제에 있어서 한 목소리를 내고자 암스테르담 조약을 통해 공동 외교안보 정책 대표부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베를린 플러스 협정을 통해서는 EU가 나토의 군사 장비와 시설을 공유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발효된 리스본 조약으로 EU의 공동 안보국방 정책(CSDP)이 구성되고 이를 관장할 부서로 유럽대외관계청(EEAS)이 2011년 설립되었다. 이처럼 EU의 안보와 국방 정책은 서유럽동맹(WEU)에서 공동 안보국방 정책(CSDP)까지 상당한 진전을 보여왔다. 특히 CSDP의 실질적인 전투 동원 병력으로서 EU배틀그룹의 구성은 EU의 국방력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EU배틀그룹은 대대규모로 구성된 2개 이상의 EU 회원국의 실전 투입 기동부대로서 작전 승인 5일 안에 배치가 가능하고 120일간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EU배틀그룹은 작전 수행 개념을 새로이 짜야 되는 상황이 됐다.
브렉시트는 국제 안보에 부정적 변수
EU 회원국 간에는 안보와 정보 협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은 현재 유럽의 체포영장 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을 통해 범죄와 테러로부터 더 안전을 보장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브렉시트는 국경 통제와 경찰 협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 찬성자들은 영국의 국제 정보 공유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라고 불리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국가 정보망을 연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국 이외에 파이브 아이즈 4개 회원국들조차도 영국이 EU에 있어야 나머지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정보 부서들과 협력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말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대내적으로 영국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안보 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안보질서에서 차지하는 유럽의 위상을 감안할 때 영국의 이탈은 기존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앞서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소멸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나토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 소련과 바르샤바동맹국에 의한 군사적 위협은 없어졌지만 유럽주둔 미군은 현재도 감축된 상태로 그대로 잔류하고 있다. 동시에 나토는 작전 반경을 유럽 밖으로 뻗치면서 친서방 또는 친미의 범세계적 집단안보체제인 ‘파토(PATO: Pro-American Treaty Organization)’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유럽 밖의 친미 국가인 일본, 호주, 한국을 나토와 협력관계를 통하여 범세계적 집단안보체제의 구축을 도모해왔다.
이에 맞서 있는 반대 진영이 1996년 창설된 상하이협력기구(SCO)다. 러시아ㆍ중국ㆍ카자흐스탄ㆍ키르기스탄ㆍ타지키스탄ㆍ우즈베키스탄이 정회원국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최대 외환 보유국으로 등장한 반면 러시아는 유가폭락으로 경기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즉, 서구세계에 큰 목소리를 높일 기회를 잡은 중국과 서구 자본력에 러시아 경제의 무기력함을 인정한 러시아 실세들이 더욱 결속을 강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SCO는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려는 중국, 옛 소련의 영화를 되찾으려는 러시아, 그리고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시장으로부터 체제 유지가 절실한 중앙아시아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강력한 구심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러시아는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정복 실패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구 소련 공화국인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접경한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이 작전 지역으로 삼는 것을 환영할 이유가 없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은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포위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남진 차단용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SCO에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이 협력적 전략 관계를 다지고 있다.
‘신 양극체제’란 나토와 친 나토 진영 ‘파토’를 한 축으로 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SCO와 친 SCO 진영을 다른 축으로 한 대립 양상을 표현한 것이다. 신 양극체제는 20세기 냉전 시절 자유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이 대립했던 양극 체제가 이념을 버리고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경제 우선 논리에 몰입된 21세기형 국제안보 구도를 지칭한다.
신 양극체제에서 파토와 SCO의 지정학적 대립 지역이 유럽이다. 유럽에서 나토의 주둔반경은 최근 러시아의 목전인 발트 3국과 폴란드까지 확대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EU 내에서 더 안전하고 더 강하다”는 캐머런 총리의 발언이 유권자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것은 영국의 국익이나 서방의 안보를 수세로 몰고 간다는 측면에서도 대사건이다.
가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는 EU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은 더 이상 EU를 통해 러시아를 견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브렉시트의 또 다른 파장은 기존 국제안보 균형에 균열을 가져왔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브렉시트는 신 양극체제에서 EU뿐만 아니라 나토를 포함한 서방 진영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러시아를 위시한 SCO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그림 1조명진 EU집행위원회 안보자문역/2016-06-29(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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