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계산 따른 국책사업 남발
SOC 정부지출 효율성 OECD 바닥
토건 누수 막으면 무상보육 가능
김해공항을 이용한 적이 없다. 부산에 갈 때는 항상 기차를 탔다. ‘서울 시내~김포공항~김해공항~부산 시내’보다는 ‘서울역~부산역’이 훨씬 편리하고 비용과 시간 면에서도 이익이다. 제주를 빼고는 다른 지방공항도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 비좁은 김해공항을 써야 하는 영남권 주민들에겐 ‘서울중심적 사고’로 비칠 수 있겠다. 허나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는 공항을 늘리는 문제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육상교통의 속도와 편리성을 감안할 때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항공교통의 경쟁력이 떨어지며, 허브공항은 인천공항 하나로 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얘기다.
그런데도 1990년대 이후 전국 각지에 공항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기차와 고속버스로 두세 시간이면 구석구석까지 닿는 손바닥만한 땅에 지방공항이 열네 개나 된다. 이 중 김포 인천 김해를 제외한 11개 공항이 적자다. 3,600억원이 든 양양공항은 연간 317만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으나 현재 이용객은 2만명에 불과하다. 3,100억원을 들여 만든 무안공항은 여객 수요를 연간 878만명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10만명 남짓이다. 1,300억원이 투입된 울진공항은 아예 취항 항공사가 없어 비행훈련장으로 용도를 바꿨다.
김해는 흑자공항이다. 저비용항공의 활성화로 국제선 수요도 늘고 있다. 지역민들은 배후인구가 1,300만명이나 되고 산업체도 많으니 ‘동북아 제2의 허브공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허브공항은 국제선은 물론 국내선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선은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제주노선 외에는 수요가 없는 게 현실이다. 김해공항 국제선이 포화상태라지만, 장기적으로 국제선 수요가 확보된다는 보장도 없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15년 뒤부터는 절대인구가 줄어든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영남권에는 공항이 다섯 개나 있다. 대구ㆍ울산ㆍ포항ㆍ사천공항은 모두 적자다. 공항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김해공항을 손봐서 활용도를 높이고 영남권 공항 간 육상교통 체계의 개선 등을 통해 연계를 효율화하는 전략이 더 합리적이다.
공항만 허투루 지은 게 아니다. 차량 통행이 뜸한 곳에 도로를 깔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건 애교 수준. 혁신 행정복합 등 온갖 이름의 신도시와 댐, 간척 등 전국 곳곳에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개발사업을 벌이느라 매년 수십 조원의 혈세가 탕진된다. 누가 이득을 보나. 정치인과 관료, 건설업자, 지방토호들이다. 중앙정부는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혈세를 쓰고 지역은 그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건설업이 가세해 끊임없이 대형 개발사업을 기획하고 부추긴다.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새만금과 시화호, 4대강 등이 대표적이다.
새만금 개발은 1987년 노태우 대선 후보가 전북 표를 의식해 급조한 공약이었다. 4대강, 영남권신공항도 대선 공약으로 시작됐다. 정치 논리로 재정이 집행되는 사업에선 시쳇말로 먼저 먹는 게 장땡이다. 개발사업에 투입되는 혈세의 약 10%가 인허가 과정의 ‘비용’으로 쓰인다. 불필요한 국책사업이 급조되고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관료, 지방토호들이 사익을 챙기는 구조여서, 정부의 SOC지출 효율성은 OECD 바닥이다.
우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개발=발전=선진화’라는 신화에 젖어왔다. 급속 성장기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산업구조가 고도화한 지금 정치적 계산으로 진행되는 개발사업은 소중한 국토를 파괴해 환경의 질을 떨어뜨리고 교육 보건 등 삶의 질 개선에 필요한 재원을 고갈시키는 주범이다. 이제 토건사업을 활용한 반짝 경기부양 시도나 표를 의식한 개발위주 사고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경제적 실익 없이 자연만 파괴하는 개발사업을 축소하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복지를 누릴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다. 만 5세 이하 보육료 정도는 국가가 모두 부담할 능력이 있는 나라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