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상 죽여도 된다” 메시지에
인권 무시 항의에도 효과 충분
필리핀의 ‘징벌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마약사범들이 줄지어 자수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 소탕을 위해 초법적인 처벌 의지를 밝힌 두테르테 당선인에 대해 인권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실제 범죄 근절 효과는 충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9일 필리핀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최근 필리핀 전역에서 경찰에 마약 투약 또는 거래 사실을 자수하는 마약사범들이 급증하고 있다. 수도권인 메트로 마닐라에서는 경찰의 감시 목록에 올라 있는 마약범 약 300명이 경찰에 자진 출석했고, 남부 디고스 시에서는 약 130명, 삼보앙가 시에서는 40여명의 마약범이 자수했다. 삼보앙가 시에서 자진 신고한 이들 중 3명은 경찰의 전국 긴급수배 대상 10명에 속해 있었다.
필리핀 마약사범들의 백기 투항은 두테르테 당선인이 대선 전후로 각종 범죄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 의지를 밝힌 데 따른 결과다. 두테르테는 지난달 27일 당선된 후 “마약 중독자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죽는 게 낫다”며 경찰과 군에 지속적으로 “마약상을 죽여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마약 용의자의 생사 여부와 상관 없이 잡기만 하면 최고 500만 페소(약 1억2천만원)의 포상금을 주겠다며 적극적인 총기 사용을 촉구하기도 했다.
두테르테의 ‘초강경’ 정책에 힘 입은 경찰 당국이 즉각 무력 사용에 나선 것도 마약사범들의 백기 투항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필리핀 일간 필리핀스타에 따르면 대선(5월 9일) 후 한달 보름여만에 마약 용의자 59명이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두테르테 당선인이 차기 경찰총장으로 지목한 로날드 델라 로사는 “경찰이 최소한의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용의자를 사살했다”고 해명했다. 물론 마약 거래에 연루된 경찰관들이 꼬리를 자르기 위해 현장에서 용의자를 사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없지는 않다.
한편 필리핀 경찰 당국은 현재까지 자수한 마약 중독자들의 경우 행정당국의 지원으로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필리핀 경찰 동부지구의 아리엘 아르시나스 대변인은 “이들은 범죄 용의자가 아닌 피해자로 대우받는다”며 재활 중시 입장을 밝혔다. 다만 마약 범죄 관련 사실은 개인 신상 기록에서 지워지지 않아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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