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까지 잠실 샤롯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는 이름도 살벌한 ‘인육(人肉) 파이’가 등장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 옥살이를 한 이발사가 이름을 바꾸고 복수를 감행, 그 성과(?)를 넣은 파이는 작품의 핵심 소품. 국내 제작단계부터 소품 마케팅을 구상했던 기획사 오디컴퍼니는 파이 전문점 타르틴에 의뢰, 소품용 파이를 별도로 제작한 데 이어 공연 기간 타르틴 매장에서 소품과 동일한 ‘스위니 토드 파이’도 판매하기로 했다. 신선혜 오디컴퍼니 홍보 대리는 “에릭셰퍼 연출이 특정 모양을 요구해 타르틴의 가렛 셰프가 한국 공연용 파이를 따로 만들었다”며 “셰프가 무대에서 사용한 파이를 고객에게 맛보게 하는 것이 즐거운 작업이 될 거라며 제안해 판매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연 시장이 커지면서 공연 기념상품(머천다이즈ㆍMD)도 진화하고 있다. 각 공연의 로고가 새겨진 투명 보틀, 머그컵 등 전통적인 제품에서 피규어, 디퓨저, 오르골, 휴대전화 이어캡까지 등장했다. 최근 가장 핫한 MD는 ‘스위니 토드 파이’처럼 무대 소품과 똑같은 제품을 일반에 판매하는 경우. 화제성 이벤트를 통해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신선혜 대리는 “소품을 직접 먹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SNS로 소개되며 공연 홍보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새빨간 체리 필링으로 속을 채운 파이는 21~26일 회차별 관람객 30명을 추첨해 선물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소품이 MD 상품으로 떠오른 건 2005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국내 초연 당시 팬텀 가면을 판매하면서부터다. 당시 브로드웨이 공연제작사에서 수입해 판매한 가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09년 재공연에서 다시 선보였고 2012년 재공연에서는 두 달 만에 수입 물량이 매진됐다. 2009년 주크박스 뮤지컬 ‘올슉업’ 공연 때는 주인공이 신은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블루 스웨이드 부츠를 팔기도 했다.
프로그램 북 등 전통적인 MD상품에 밀려 한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소품 MD’가 다시 인기를 끈 건 2012년 뮤지컬 ‘위키드’ 국내 초연 때부터. 노민지 설앤컴퍼니 홍보 과장은 “2003년 ‘위키드’ 브로드웨이 초연부터 화장품 브랜드 맥(MAC)과 분장용 제품들을 공동 개발해 시중에서도 판매했다”며 “2012년 한국 초연하며 판매용 소품 종류를 더 늘렸다”고 말했다. 위키드의 주인공 초록 마녀 엘파바가 쓰는 무자극 무착색 초록 파운데이션 ‘랜드스케이프 그린’을 비롯해 립스틱, 아이섀도 등 위키드 전용 메이크업 제품 10여 가지가 2012년부터 국내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노 과장은 “(지난 달 대구 공연으로)일시 품절된 메이크업 제품들은 (다음달 서울 공연을 앞두고)다시 수입된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도 최근 ‘심청’ 공연에서 소속 단원들이 신었던 것과 똑같은 사이즈의 토슈즈를 사인해 판매했다. 라선아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사업팀 수석리더는 “수년 전 주역 무용수들이 신었던 토슈즈를 이벤트로 후원 회원들께 선물하다가 똑같은 사이즈의 새 토슈즈에 사인을 해서 팔기 시작했다”며 “한 켤레에 10만원인데도 매 회 10켤레 판매될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노민지 과장은“MD 판매는 아이돌 출연 작품의 프로그램 북 등에 집중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기획사가 전문 제작업체와 전용 제품을 개발해 소품 MD를 출시하는 것은 수익을 노린 것이라보다는 홍보용”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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