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제목이다. 2년 전 같은 이름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진격의’라는 수식어를 사람 이름이나 회사, 단체 등에 붙이는 게 유행할 정도였다. 인지도가 높디 높은 ‘진격의 거인’은 최근 극장가에서 수모를 겪었다. 동명의 실사영화는 정식 개봉은 하지 않은 채 지난달 3일 극장에서 마니아들을 위한 1회 상영회만 연 뒤 IPTV의 주문형비디오(VOD) 등 부가판권시장으로 향했다. 2편인 ‘진격의 거인 파트2’는 아예 극장 상영 없이 부가판권시장으로 직행했다.
‘진격의 거인’ 사례는 최근 일본 영화의 극장가 약세를 상징한다. 한때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탄탄한 관객층을 보유했던 일본 영화가 최근 관객들의 홀대를 받고 있다.
지난 16일 개봉한 ‘백엔의 사랑’도 일본 영화의 극장가 위상을 보여준다. 영화의 완성도와 대중성에 비해 흥행 성적이 좋지 않다. 28일까지 4,586명이 관람했다. 예전 같으면 일본 영화 팬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1만 관객은 어렵지 않게 동원할 만한 영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영화는 한때 큰 돈을 안겨주진 못해도 손해날 확률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양성영화 범주에서는 흥행 기준이던 1만명 관객을 종종 넘으며 수입사 관계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2006년이 일본 영화의 정점이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이 개봉하며 다양성영화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쓰마부키 사토시와 오다기리 조, 우에노 주리 등이 스타로 떠오르며 극장가에 일본 영화 바람을 몰고 왔다. 같은 해 8월엔 ‘일본침몰’이 개봉해 94만 관객을 동원하며 붐을 이어갔다. 개봉작 기준 관객(서울) 점유율이 2.6%를 기록하며 2005년(0.8%) 대비 3배 이상 성장했다. 국내 영화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에 이어 오랫동안 3위를 차지해 온 유럽 영화까지 제쳤다. 수입사들이 일본 영화 사재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이때쯤 나왔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한국 문화시장 상당부분을 잠식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됐다는 섣부른 주장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일본 영화는 2006년을 정점으로 하향 곡선을 탔고 지난해 관객 점유율은 1.9%(전국)에 그쳤다. 유럽 영화 점유율(3.3%)에 못 미치는 수치다. 지난해 개봉한 ‘심야식당’이 13만2,216명을 모으며 일본 영화의 저력을 보였다고 하나 오래 전부터 만화와 TV드라마를 통해 형성된 팬층의 덕을 본, 예외적인 경우라는 분석이다.
일본 영화의 약세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스타 감독이나 스타 배우 등 내세울 만한 흥행 카드가 없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으로 흥행성을 확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정도나 티켓 파워를 지녔다. 일본 영화의 속성에서 태생적 약세가 거론되기도 한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일본 영화는 내용이 너무 순하거나 지나치게 잔인하다”며 “극단적인 성향 때문에 평범한 관객들을 극장에 끌어들이기엔 애초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는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개봉도 하기 전 불법 파일이 떠도는 점도 약점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최근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불편한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며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눈길을 끌 만한 애니메이션을 내놓지 못하는 점도 큰 이유”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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