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배우 안성기는 올해로 59년 차, 내년이면 환갑의 연기 경력이다. 같은 일을 반세기 이상 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굴곡 심한 연예계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뿌리를 내리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그 어려운 일을 안성기는 해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커피는 맥심, 친구는 박중훈'이라는 말이 안성기를 대변할까. 안성기는 33년 째 동서식품 맥심의 광고모델이며, 박중훈과는 수십 년째 대표 절친으로 통한다. 안성기는 "나의 인생 키워드는 '한결같음'이다. 환경이 변하더라도 사람의 본성은 그대로여야 한다. 예전엔 겸손했는데 지금은 거만해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영화 '사냥'이 29일 개봉했다.
"2년 전 문득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고 영화에 출연했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번 작품은 다르다. 호기심이 생겼고 장르나 역할도 신선했다. 이 나이에 비 맞고 액션할 줄은 몰랐다."
-등산을 즐기나.
"원래 산을 좋아했는데 군대 이후로 멀리하게 됐다. OP(전방 소초)에서 6개월 정도 복무할 때 질려버렸다(웃음). 촬영하면서 산에 다니는데 그때마다 공기도 좋고 참 좋더라. 그렇지만 쉬는 날 찾아가고 그러진 않는다."
-추운 겨울 산을 달리느라 힘들었겠다.
"(안)성기가 극중 사냥꾼 기성이 됐으니 잘 해내야지. 힘든 것은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 러닝을 즐기는데 그걸 산에서 했을 뿐이다. 돌 뿌리나 넝쿨 등도 많았는데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민소매에 팔 근육도 노출했다. 관객석에서 탄성도 터졌다.
"작품을 위해 따로 준비한 근육은 아니다. 평소 내 몸이다. 하루 이틀 운동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 민소매도 내가 자주 입는 옷이다. 사냥꾼 역할이기도 했고, 건장한 엽사꾼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 살짝 근육을 드러냈다."
-또 다른 외모적 설정이 있었나.
"백발의 긴 머리. 염색 안 한 내 머리에 가발을 붙였다. 늙은 것 투성이인 산을 표현하기 위한 비주얼 장치랄까. 영화엔 편집돼 짧게 나오지만 야생 고라니를 뜯어먹는 모습을 찍을 땐 인간성을 잃은 짐승처럼 보여야 했다."
-엽총은 무섭지 않았나.
"호기심이 있었다. 소리가 엄청 크다. 총알을 어깨에 매고 여덟 발 들어가는 총이 가장 폼이 나더라."
-대사로도 나오지만 그 총 들고 있을 때 정말 람보 같았다.
"대본에 '람보도 아니고 뭐야'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그런 대사구나 했는데 영화관에서 보니 관객들이 다 웃더라. 하하. 뜻하지 않았는데 웃음이 나와 살짝 당황했다. 영화에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조진웅과는 2007년 영화 '마이 뉴 파트너' 이후 두 번째 호흡이다.
"지금은 몸이 슬림한데 그 때는 건장하고 땅땅한 느낌이었다. 혼자 촬영장에서 사투리를 막 뱉는 모습을 봤는데 노력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에너지 넘치는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장에서 마른 오징어에 맥주도 함께 즐겼다고.
"촬영장이 파주인데 근처 농수산시장에 가서 오징어 몇 축을 사와 같이 구워먹었다. 비가 3일 연속 내려 기분도 우울했는데 오징어를 씹으니 싹 풀렸다. 해도 마침 개고 참 좋았다. 옛날엔 마른 오징어를 좋아하는 여자 스태프가 많았는데 요즘은 소수만 즐기는 것이 살짝 아쉬웠다."
-과거 영화 환경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나.
"홍보 일정이 굉장히 많아졌다. 예전엔 그게 없었다. 인터뷰가 잡히면 하고 아니면 말고, 그래도 영화는 또 굉장히 잘됐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열심히 더 홍보해야 한다."
-지금 관심사가 온통 '사냥'의 흥행 같다.
"영화의 중심에 있다 보니 잘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다. 다른 누구보다 책임감을 느낀다. 언론시사 때 굉장히 두근거렸다. 그런 두근거림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영화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다. 당장 뭘 해서 잘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영화계 안팎으로 굉장히 바쁜 걸로 안다.
"몇 년 전만해도 10일 여행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일정이 빡빡했다. 2년 전부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도 다니고 영화도 많이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여행도 한참 전 미리 예약하고, 영화 일정도 넉넉하게 열어두고 있다.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매력이 있다면 하겠다."
-반 세기 이상 연기를 했는데 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
"내가 많이 했지만, 안 해본 역할들이 더 많다. 똑같은 직업이라도 환경에 따라 인물이 변한다. 세월이 흘렀으니 느낌도 다르겠지. 당장에 영화 '라디오스타'를 리메이크를 해도 느낌이 다를 것이다. LA에 있는 한심한 가수 하나 찾는 설정으로 말이야. 괜히 하는 농담이다. 하하."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영화계에도 많은 선배들이 계셨는데 다들 그만두셨다.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이 드물다. 그러다 보니 '사냥'은 나에게나 영화계에나 상당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폭넓은 기획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또 배우로서의 정년을 늘린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사냥'으로 잘 돼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지 않겠나(웃음). 후배들한테'이 정도 나이까지는 으레 연기를 하는 구나'는 하는 버팀이 되고 싶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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