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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과 역효도

입력
2016.06.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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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이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란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처음 들어 보는 기념일이다. 노인 학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을 높이기 위해 유엔과 세계 노인학대방지망(INPEA)이 제정한 세계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도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과 보건복지부가 기념식을 하고 노인학대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예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세상에 기념할 게 따로 있지, 그런 인식의 날을 제정한다고 해서 노인학대가 개선되고 줄어들 수 있을까. 그래도 그런 기념일이 없는거 보다는 나은가 보다. 경찰이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했더니, 1일부터 10일까지 총 87건 중 35건이 접수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늙은이 당사자인 나는 그저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 문제이고 노소 개개인의 품성의 문제지, 유엔이나 국가기관이 나서서 개선될 일은 아닌 듯싶다. 하긴 노인 시설이나 가족 간에 자행되는 노인학대나 앞가림을 제대로 못 하는 노인을 방치하는 것은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일이긴 하다.

2050년까지 가장 빠르게 고령화될 나라가 일본 다음으로 우리나라다. 65세 인구비중이 일본이 40.1%로 1위, 우리나라가 35.9%로 2위다. 3명 중 1명은 노인이란 얘기다. 이 많은 노인이 언제까지나 자기 한 몸 건사도 못하고 사회와 가정에 짐으로 남아 있을 참인가.

자식들이 부모 속 썩여가며 자라 온 세월보다 다 늙어버린 부모가 건강 돌봄, 경제적 도움, 정서적 의뢰 등으로 자식에게 기대는 세월이 훨씬 길어졌다. 자식들이야 20, 30년이면 다 자라 부모 곁을 떠난다. 하지만, 100세 넘어 살 부모들을 돌봐야 하는 자식이나 사회는 20, 30년은 기본이요, 40, 50년 지속할 수 있다.

더구나 돌봄의 질도 크게 다르다. 어린 사람을 돌보며 받는 기쁨은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지만, 늙은이를 돌보는 것은 기쁨보다는 의무감이 앞선다. 기나긴 의무이행은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겪은 서구 젊은이들의 의식 속에는 너무 긴 세월, 짊어져야 할 노인부양의 부담을 마치 자식을 집어삼키는 크로노스 같다고 생각한단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인데, 이 신은 자식들을 잡아먹다가 종당에는 제우스에게 추방당한다. 어쩌자고 우리 노년 세대가 젊은이를 잡아 먹는 크로노스에 빗대어졌을까.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는 것을 효도라 한다면, 늙은 부모세대가 자식들에게 잘해 줄 수 있는 건 무얼까. 늙은 부모들이 탈 없이 살아 자식들의 부모 걱정과 염려를 덜어 주고, 부모 봉양의 수고를 줄여 주는 것이리라. 이것이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소위 ‘역효도’다. 이 역효도야 말로 이 시대를, 100년 넘게 살아야 할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할 우리 노년들이 치러야 할 과제다. 진정 바라는 것은 우리 노년 세대가 자식들 세대에게 역효도를 해 줄 수 있을 만큼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정서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행여 자기 방임으로 망가진 채 노후를 사는 것은 사회와 가족을 잡아 먹는 크로노스 꼴이 될 수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적인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의 孝를 평가하고 부럽다 했는데, 어느 새, 우리나라도 노인학대가 만연해 있다. 사회나 젊은이에게 요구하기 보다 우리 노년세대가 먼저 우리 자신을 바로 서야 토인비가 부러워하던 노소관계가 제대로 정립될 수 있지, 기념일로나 캠페인만으로는 될 수가 없다.

새로 노년세대로 진입한 베이비붐 세대는 높은 교육 문화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축적된 지식과 풍부한 경험 그리고 재력을 통해 사회에 짐이 아니라 사회를 리드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제 노인이 세상을 이끄는 세상이 다가 오고 있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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