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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내일 말고 ‘오늘’의 주인공

입력
2016.06.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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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자연스럽게 임산부 배려석이 눈에 띈다. 핫핑크색 의자 위엔 이곳이 임산부 배려석임을 표시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배가 불룩한,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을 상징처럼 쓴다. 그리고 몇몇은 웃는 아기 얼굴을 상징으로 붙여놓았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라는 문구도 함께 쓰여 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애를 밴 ‘여성’의 몸은 지우고 그 배 속에 있는 애가 사회적 배려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오늘의 주인공이 없는 자리에 내일의 주인공만 그려 넣는다.

사회적 재생산의 의무를 강조하는 보수적인 사회는 여성의 몸을 다음 세대를 잉태할 ‘신성한 모체’로 본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 또한 엄격하게 통제한다.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여성의 선택지가 아니고 피임 또한 완전한 여성의 권리가 아니다. 피임이 내 권리가 아니라 국가 권리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살 수 없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으로 재분류했다. 식약처는 “3년 후에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응급 상황에 피임약을 먹어야 하는 여성들은 앞으로 장장 3년간 평일이면 산부인과로, 주말이면 응급실로 침착하게 방문하면 된다. 응급 피임약은 사전 피임약과는 다르다. 응급피임약은 피임에 실패하거나 원치 않는 성관계로 ‘응급 상황이 생긴 경우’에 복용하는 약이다. 24시간 이내에 약을 먹으면 피임률이 95%, 48시간 이내 복용 시 85%, 72시간 내 복용 시 58%다. 시간이 갈수록 피임률이 떨어진다.

이 점을 감안해 2012년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은 응급피임약을 약국 구입이 가능한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2년에 이어 올해도 산부인과계와 종교계의 반대에 부딪혔다. 산부인과계는 약물 오남용과 피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종교계는 생명 윤리를 문제 삼았다.

우리나라와 반대로 미국은 오히려 사후피임약 사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3월 30일, 사후피임약을 마지막 월경 후 7주까지 복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던 것을 임신 10주까지 복용 시기를 늘리는 안을 발표했다. 의사가 아니라 임상 간호사도 처방할 수 있게 했다. FDA는 그동안의 연구조사에서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선 응급피임약이 일반약으로 분류돼 있으며 영국에선 16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다. 의아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선 약물 오남용을 이유로 또 한 번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미뤄지지 않았던가. 참 이상한 나라들이다.

미국은 한술 더 떠서 이상하다. 미국이 얼마나 이상한 나라인가 하면 대통령이, 그리고 대선후보가 낙태가 여성의 권리라고 외친다. 지난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텍사스 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 위헌을 선고했다. 이 법은 2013년 임신 20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고 낙태 시설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는 안을 담고 있었다.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이번 위헌 선고를 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여성의 기회가 확장됐다”고 기뻐했고 클린턴 대선 후보는 “텍사스뿐 아니라 미국 전역 여성들의 승리”라며 “안전한 낙태는 단지 서류 상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라고 평했다.

진짜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수정란을 걱정하지 않고 여성의 권익을 걱정하다니.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지’않고 ‘여성의 기회가 확장됐다’며 기뻐하다니. 아마 저런 나라엔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에 애 얼굴이 둥둥 떠다니질 않을 것이다. 오롯이 임산부를 ‘내일의 주인공’이 열 달 머무는 모체로만 해석하는 상징도 없을 것이다.

조소담 비트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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