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원으로 뭘 사지?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뭘 살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100원 이하 가격표가 붙은 상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최저가 막대사탕 한 개가 150원 정도다. 1,000원짜리 ‘후라보노’ 한 통에 껌 9개가 들었으니 개당 100원이 넘는 셈이다. 실로 ‘껌값’도 안 되는 100원이다. 그러다 보니 결제 보다는 거스름 용 잔돈 역할에 치우쳐 있다. 10원 또는 50원짜리 동전이 자취를 감추면서 100원짜리 동전은 실제 유통되는 화폐의 최소단위로 자리잡은 듯한 느낌이다. 아예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게임을 한 판 하거나 장을 볼 때 카트에 끼우는 ‘코인’이 돼버린 초라한 현실도 애처롭다. 하찮은 100원의 존재가 의외로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드는 경우도 있다. 대형 마트에서 흔한 가격표는 9,900원, 반대의 경우는 10,100원이다. 100원을 빼고 넣음에 따라 심리적 가격은 천원대와 만원대로 갈리게 되니 100원의 마술이 신통할 따름이다.
화폐로서의 가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역할 또한 제한적이지만 사용하는 주체나 상황에 따라 100원의 의미는 다르게 환산된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의 시급과 억대 수입을 꿈꾸는 비제이(Broadcasting Jockey)의 별풍선, 꿈을 좇는 무명 가수의 은행 잔고나 시골 할매의 쌈지 속에 모아둔 100원짜리 동전은 각각 다른 가치와 의미로 유통되고 있다.
#2. 100원짜리 동전 몇 개에 요동치는 수백만 명의 운명
“국민의 삶은 또 100원짜리 몇 개의 흥정으로 치환됐다.” 지난해 7월 2016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450원 인상된 6,030원으로 정해지자 알바노조가 내놓은 논평이다. 수백만 알바 노동자들의 절박한 삶을 개선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최저임금의 현실을 ‘100원짜리 몇 개의 흥정’으로 표현했다. 그 후 1년, 노동계는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했고 경영계는 또 다시 동결로 맞섰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인 28일까지도 서로의 입장차는 좁히지 못했다. 최근 3년간 평균인 8% 정도로 인상률이 정해질 경우 최저시급은 또 다시 100원짜리 동전 다섯 개에도 못 미치는 480원 가량 오르는데 그치게 된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 받는 알바 노동자는 전국에 500만 명, 이 중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이는 222만 명으로 추산된다. ‘100원짜리 동전 몇 개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보장받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미래는 아직 멀기만 하다.
#3. 어르신들의 든든한 자가용 ‘100원 택시’
‘100원 택시’는 오지마을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수요응답형 교통수단이다. ‘100원 택시(전남)’, ‘마중 택시(순천)’, ‘행복 택시(하동)’, ‘섬김 택시(예산)’, ‘따복 택시(경기)’등 지역마다 명칭과 운영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용료가 단돈 100원이라는 점은 같다. 100원을 제외한 나머지 운송요금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장이나 병원 가기가 힘들었던 주민들에게 단돈 1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택시는 ‘기사 딸린 자가용’이나 다름 없다. 2014년 ‘100원 택시’를 도입한 전라남도의 경우 올해 4월까지 연 인원 22만 명 이상이 100원 택시를 이용할 만큼 만족도가 높다. 달릴수록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100원 택시’는 지금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4. 100원 벌려면 노래 239번 들어야
우리가 즐겨 듣는 노래의 가치는 얼마일까. 음원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또 얼마나 될까.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운로드의 경우 곡당 700원, 스트리밍은 회당 7원으로 음원 가격을 규정하고 있다. 모바일 환경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1회 재생 시 발생하는 저작권료가 4.2원, 그 중 작곡 편곡 작사 기획자 몫을 제외하고 실연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매출의 6%인 0.42원에 불과하다. 가수가 음원을 통해 100원을 벌려면 239번의 스트리밍이 발생해야만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은 이보다 더 가혹하다. 음원사이트의 묶음 또는 할인상품으로 인해 실제 다운로드는 곡당200원 정도면 가능하고 심한 경우 100원만 내면 한달 동안 무제한 스트리밍도 가능하다. 갈수록 존재감을 잃어가는 100원짜리 동전이 디지털 음원시장에서는 좀처럼 벌기 힘든 ‘천금’이 되어가고 있다.
#5. ‘억’소리 나는 100원짜리 별풍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인터넷 세상에서 현실이 될 수 있다. ‘티끌’은 100원짜리 별풍선이고 ‘태산’은 억대의 수입이다. 컴퓨터 앞에서 춤을 추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는 1인 인터넷 방송 진행자, 일명 ‘비제이(BJ)’들의 꿈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선물하는 별풍선은 비제이의 주된 수입원이다. 능력에 따라 별풍선으로 수억 원을 버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 활동하는 비제이는 약 150만 명 정도, 앞다퉈 별풍선을 쫓다 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다. 컴퓨터 앞에서 자해를 하거나 노출 또는 음란행위를 벌이는 경우다. 최근 연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방영한 여성이나 자동차를 시속 200km로 달리며 벌인 난폭 운전을 생중계하다 적발된 남성 모두 목적은 단 하나, 별풍선이었다. ‘억’소리 나는 수입을 꿈 꾸다가 ‘억’소리만 내고 말았다.
#6. 점차 사라지는 애물단지
주된 결제 수단이 신용카드와 모바일로 옮겨간 지 오래지만 가끔 주머니에서 짤랑 거리는 1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한다. 거추장스러우면서도 없으면 아쉬운 게 100원짜리다. 장을 볼 때 카트에 끼울100원이 없으면 특히 그렇다. 1,000원짜리 지폐로 교환한 동전 10개의 무게와 소리가 부담스러운데다 왠지 1,000원을 잃어버린 허전함마저 든다. 저금통에 넣어 둔 동전을 은행에 가져가 바꾸는 것조차 귀찮다 보니 집안에는 동전이 쌓이고 또 쌓인다. 지난해 말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100원짜리 동전은 93억 7,100만개, 그 중 많은 수는 저금통 안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00원짜리 동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 올해로 46세를 맞은 동전의 운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도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폐로서의 가치가 낮아지자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겨우 100원짜리 동전에 넣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디지털 정보가 동전의 역할을 대신 할 세상에서 ‘100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그래픽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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