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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희사 할머니 기려 32년째 제사지내는 청주 용담동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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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희사 할머니 기려 32년째 제사지내는 청주 용담동 주민들

입력
2016.06.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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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용담동복지협의회 회원들이 28일 충북 청주시 용담동 용담복지회관 앞 길에 제상을 차리고 마을에 땅을 희사한 김금옥·배정오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한덕동 기자
청주용담동복지협의회 회원들이 28일 충북 청주시 용담동 용담복지회관 앞 길에 제상을 차리고 마을에 땅을 희사한 김금옥·배정오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한덕동 기자

“여사님들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아 상부상조하는 훈훈한 마을을 만들겠습니다”

28일 오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용담복지회관 옆에 있는 작은 추모비 앞에 제상이 차려졌다. 청주용담동복지협의회 신재우(68)대표 이사의 추도사가 이어지자 80여명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추모비의 주인공은 이 마을 출신인 고(故)김금옥·배정오 두 할머니다.

용담동 주민 100여명으로 구성된 청주용담동복지협의회가 두 할머니 제사를 지내는 사연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할머니는 평생 어렵게 벌어 마련한 땅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을 주민 친목계인 ‘가좌골 동계(洞契)’에 희사했다. 배 할머니가 먼저 논 여섯마지기(3,900㎡)를 내놓았고, 이어 김 할머니가 논밭 네 마지기(2,600㎡)를 기부했다. 가족 없이 홀로 살던 두 할머니의 부탁은 “제사나 지내달라”는 게 전부였다.

1984년 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주민들은 약속을 잊지 않고 이듬해부터 김 할머니의 기일인 음력 5월 24일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렇게 한 해도 빼놓지 않은 마을 제사가 28일로 32주기를 맞았다.

먼저 돌아가신 배 할머니는 연락이 끊겼던 손자가 사후에 나타나면서 주민들은 할머니의 기탁 재산을 가족에 되돌려줬다. 하지만 여전히 김 할머니와 함께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신 대표 이사는 “전 재산을 희사한 배 할머니를 본받아 김 할머니도 선행을 한 것”이라며 “뒤늦게 가족이 나타나 어쩔 수 없이 땅을 되돌려 줬지만 배 할머니의 나눔 정신은 주민들 마음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할머니들과 한 또 하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탁받은 땅에서 나온 소득을 소외 이웃을 돕는 데 쓰고 있다. 동계를 용암동상조회로 이어가던 주민들은 보다 체계적으로 이웃 돕기를 하기 위해 2004년 사단법인 용담동복지협의회를 만들었다.

협의회는 김 할머니가 기탁한 땅이 택지개발지구에 포함돼 나온 보상금으로 건물(현 복지회관)을 짓고 여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인근 경로당 10여 곳에 겨울철 기름값을 지원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매년 1월 효행상도 시상한다.

신재우 대표는 “두 분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사셨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은혜를 베푸셨다”며 “여사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웃돕기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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