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자본가’를 지칭하는 ‘살찐 고양이’는 언론인 프랭크 켄트가 1928년 출간한 도서 ‘정치적 행태(Political Behavior)’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인데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월가의 탐욕스러운 경영진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턱없이 과도한 기본급과 천문학적 보너스와 퇴직금을 챙기면서도 세제혜택까지 누리는 행태를 비꼰 것이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2010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월가의 금융계 인사들을 살찐 고양이라고 부르며 공격한 바 있죠.
28일 정치권에서 이 같은 기업 임원진의 최고 임금을 제한하는 법이 나와 눈길을 끕니다. 원내 유일한 진보정당인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발의한 최고임금법은 기업이 임직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올해 6,030원 기준 약 4억5,000만원)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심 대표는 이날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의당은 총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과 함께 대기업, 공공기관 임직원 임금 및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보수 상한제 도입을 약속했다”며 “최고임금법, 일명 ‘살찐 고양이법’은 그 첫 번째 실천”이라며 법안발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심 대표는 “최고임금을 초과하는 임금을 받은 개인과 법인에게 과징금을 부과해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최저임금자,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사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법을 시작으로 공공기관 임직원과 국회의원, 공직자의 최고임금 제한도 차례로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심 대표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법정시한인 이날에 맞춰 법안을 발의했다는데요. 최저임금 논의는 재계에서 10년 연속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한 반면, 노동계는 시급 1만원까지 인상하자고 맞서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 78곳 경영자의 보수는 일반직원 평균임금의 35배이며 최저임금에 비해서는 무려 180배 많을 정도로 임금격차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또 OECD 국가에서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 평균격차는 5~7배 정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1배가 넘는다고 하네요. 이에 정의당은 앞서 발의한 최저임금 1만원법에 더해 최고임금법까지 발의, 임금격차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하겠다는 겁니다.
심 대표는 지난해에도 ‘살찐 고양이법’을 언급하며 최고임금제를 이슈화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지난해 9월 11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심 대표는 임금피크제를 주장하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자꾸 고통 분담하자고 하는데, 유럽에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있다. 살찐 고양이들 살 들어내는 게 고통 분담이지 200만원도 못 받는 940만 노동자들은 졸라맬 허리띠도 없다”며 공박했습니다. 정의당은 이어 최고임금제 토론회를 여는 등 공론화에 힘을 쏟았지만 당시 19대 국회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흐지부지 됐습니다. 때문에 20대 국회가 개원하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최고임금제를 의제화하겠다는 판단입니다.
해외에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임원들의 보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27개 회원국 중 영국을 제외한 26개 국가가 은행장들의 보너스를 연봉의 최대 100%까지 제한하고 주주의 3분의 2가 동의했을 때 연 수입의 200%까지 가능토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같은 해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총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주민 발의안이 국민투표에서 70%에 가까운 찬성으로 가결되기도 했죠. 심 의원 측은 “이제 국내에서도 이 법안을 논의할 시기가 됐다”며 “법안을 발의했으니 각계의 의견을 모으고 힘을 모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20대 국회에서는 살찐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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