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 GG’, ‘알파고, 스타크래프트서 ‘GG’칠까?’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당시 나온 언론 매체의 기사 헤드라인이다. ‘Good Game’의 약어인 GG는 게임에서 나온 단어로, 졌을 때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말이다. ‘치다’란 동사와 맞물려 일상에서 ‘포기하다’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GG’가 신문 헤드라인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전에 등재됐다. 물론 국어사전이 아니고 게임사전이다.
국내 최초의 ‘게임사전’(해냄)이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의 협업으로 출간됐다. ‘GG’ ‘랙’ ‘딜’ 등 게임 관련 용어를 포함한 2,188개의 표제어를 총망라해 1,304쪽짜리 책 한 권에 담아냈다.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이인화, 한혜원 교수를 필두로 62명의 연구진이 참여했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감수를 맡았다.
이재성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상무는 28일 이화여대 SK텔레콤관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국내 게임 이용자가 2,000만명이 넘고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극복하고 건강한 게임 문화를 발전시킬 방법으로 사전 편찬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게임 문화 양성화를 위해 사전이란 매체를 택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인화 교수는 “사전은 특정 분야의 신어(新語)를 일반어로 편입시켜 지식의 자질을 부여하는 문화적 위계화의 표지”라며 “게임에서 파생된 용어들이 이미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속어 취급을 받는 것은 이 사회가 이른바 ‘겜돌이’들을 언중(言衆)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게임 사전에는 ‘겜돌이 용어’로 치부됐던 단어들이 진지하고 치밀하게 분석돼 있다. 연구진이 2010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5년간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들을 조사한 결과 1위는 ‘아이템’이었다. 사전에서는 ‘아이템’을 “게임 플레이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가상의 물건 또는 대상”으로 정의한 뒤 장착 아이템, 소모 아이템, 탑승 아이템으로 나누고, 게임 아이템을 둘러싼 플레이어 간 갈등까지 다루며 장장 8쪽을 할애했다. 이 밖에도 버스, 레이드, 강화, 던전, 롤백, 몹, 네임드, 어그로, 캐리, 물약 등의 단어가 많이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상무는 “아이템은 ‘득템’(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음)으로, 딜은 ‘극딜’(극심한 타격을 입음)로 다양하게 변용을 거듭하며 일반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며 “게임사전은 이처럼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어원과 사례를 추적해 기술함으로써 게임 용어를 ‘인식 가능한 지식의 대상’으로 확산시키는 데 목적을 뒀다”고 말했다.
연구진 조사 외에 게임 유저들을 대상으로 공모도 진행했다. 지난해 6월 26일부터 7월 12일까지 진행된 게임사전 표제어 자유공모에는 총 1,181명이 참가해 8,000여개의 단어를 게임사전에 등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전 후반부에는 ‘대표 게임선’을 정리했다. 게임이 최초로 상품화된 1970년대부터 오락실에 게임기가 대량 보급된 1980년대,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PC 보급이 급증한 1990년대,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성장한 2000년대까지, 시대별 대표 게임을 망라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게임 ‘테니스 포 투’, 역할수행 게임의 시초 ‘던전 앤 드래곤’, 한국 e-스포츠의 대중화를 연 ‘스타 크래프트’, 게임의 상업적 가치를 증명한 ‘리니지’, 국내 온라인 게임의 시작으로 알려진 ‘바람의 나라’등 366개의 게임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한혜원 교수는 “대표게임 선정은 게임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만큼 가장 많은 이견이 예상됐던 부분”이라며 “최근 5년 간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선정했다는 점과 추후 지속적으로 갱신할 계획이라는 점을 감안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GG’와 ‘극딜’이 비속어로, 게임 유저는 ‘게임 폐인’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최초의 게임 사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인화 교수는 “서양에서 전화 받을 때 쓰는 ‘헬로(Hello)’는 지금 당당히 사전에 올라와 있지만 1876년 전화기가 발명됐을 때만 해도 사전에 없던 단어였다”며 “게임 인구가 증가하고 게임 안에서 맺어진 인간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볼 때, 게임 용어를 알고 사용한다는 것은 미래의 인간 관계를 선취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증보판을 발행하고 전자책과 모바일 앱으로 출시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며 이번 출간을 “첫 출발로 봐달라”고 덧붙였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신재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경제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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