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윤형빈(36)은 최근 ‘개그 시어머니’를 만났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임혁필소극장에서 만난 윤형빈은 “이경규 선배님 때문에 죽겠다”며 웃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이경규와 개그 호흡을 맞추는 데 “신인 때 ‘개그콘서트’ 말고 이렇게 회의를 자주 하는 건 처음”이란다. 이경규가 1997년 MBC ‘오늘은 좋은 날’ 코너 ‘별들에게 물어봐’를 끝낸 후 19년 만에 개그 공연을 선보인다고 긴장해 낮·밤 가리지 않고 아이디어 회의를 소집해서다. 윤형빈은 지난 13일 오후 7시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이경규와 개그 회의가 잡혀 있다며 서둘러 차를 몰고 나갔다. 윤형빈은 내달 2일 서교동 윤형빈소극장에서 이경규, 이윤석과 함께 ‘응답하라 이경규’ 공연을 한다. 내달 1일부터 3일까지 홍익대 일대에서 열릴 코미디 축제 ‘제1회 홍대코미디위크’(‘홍코’) 일환으로 준비된 무대다.
‘홍코’를 위해 윤형빈은 ‘세바스찬’(임혁필)과 ‘골목대장 마빡이’(김대범)를 먼저 찾았다.윤형빈은 홍익대 인근에서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 ‘홍코’를 제안했고, 세 사람은 “코미디 공연 활성화”를 위해 뜻을 모았다. 윤형빈(20기)과 임혁필(13기), 김대범(20기)은 KBS2 ‘개그콘서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후배 사이다.
부산에서 처음 코미디 전용 공연장을 꾸려 8년째 운영 중인 윤형빈은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코미디 공연이 뭐야’다”며 “아직도 많은 분들이 코미디 공연을 낯설어 해 저변 확대를 위해 축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영국 에딘버러페스티벌 같은 세계적인 공연 축제에서 코미디 공연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을 받고, 공연 시장에서의 입지도 넓은데 유독 한국에선 힘을 쓰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에 판을 벌인 것이다. 김대범은 “코미디 공연은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공연을 꾸리고 즉흥성이 강조돼 TV 속 코미디와는 많이 다르다”며 “가수들의 콘서트나 배우들의 공연은 돈을 내고 보는 데 주저하지 않는데, 개그맨들의 공연은 돈을 내고 보는 것에 대해 인색한 고정관념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김대범이 ‘홍코’ 때 선보일 코미디 공연은 ‘당신이 주인공’(7월1~3일, 김대범소극장)이란 제목의 관객 참여 공연이다. 관객을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배우로 설정해 관객이 공연에서 특정 캐릭터로 연기를 해야 하는 콘셉트다. TV에선 선보여진 적 없는, 어머니들을 위한 코미디 공연 ‘투맘쇼’(7월1일·3일, 윤형빈소극장)와 ‘김영철 조크 콘서트’(7월2일, KT&G상상마당) 등도 관객을 찾아간다.
세 사람은 공연장을 운영하며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개그맨 출연료를 마련하지 못해 극장을 담보로 대출 받기는 기본. 직접 길거리로 나가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도 돌렸다. “조금이라도 입소문을 내기 위해 매표소에 들어가 표를 사러 줄을 선 관객들에 깜짝 코미디”(김대범)를 한 적도 있다. 극장 운영 얘기를 묻자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휴~” 소리를 내뱉었다. 열정이 담긴 한숨이었다.
“돈요? 에이 그거 생각하면 못하죠. 밖에서 줄곧 시달리다가도 무대에만 서면 힐링이 돼요. 그래서 이변이 없는 한 쭉 공연장을 운영하려고요.”(윤형빈)
“웃으며 서로 가까워지는 게 개그잖아요. 공연을 오래하다 보니 친구도 늘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즐거움을 더 많은 관객과 나누고 싶어요.”(임혁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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