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레스터셔 주에 있는 보호소에는 세 번이나 입양을 갔지만 세 번 모두 보호소로 돌아온 개가 있다. 첫 번째는 물건들을 씹어서, 두 번째는 다른 개에게 으르렁대서, 세 번째는 너무 활동적이라 입양자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자라’란 이름을 가진 이 개는 그 후로 1년 6개월이 넘도록 입양을 가지 못해 보호소 직원들은 안락사마저 고려할 정도였다. 이렇게 활동적인 개가 좁은 케이지 안에서 평생 사는 것은 오히려 고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라가 안락사의 위기에 놓였을 때, 엠마 힌슨이란 여성이 유기견들을 산책시켜 주는 봉사를 하기 위해 보호소에 들렀다. 보호소 직원은 수의사 직업을 가진 힌슨이 다루기 어려운 개도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힌슨에게 자라를 산책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힌슨과 자라의 인연은 시작됐다.
힌슨은 수주간 보호소를 방문해 자라를 산책시키다가, 다정하고 애교가 넘치는 자라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동물전문매체 도도와의 인터뷰에서 “자라는 집에 오자마자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집이었던 것처럼 곧바로 적응했다”고 말했다.
문제견으로 여겨졌던 자라는 힌슨에겐 완벽한 개였다. 자라의 넘치는 에너지는 활동적인 그의 생활 방식과 딱 맞았다. 자라 또한 힌슨을 잘 따랐고 언제나 그의 곁에 있길 원했다. 그렇게 행복한 삶을 보내던 중 힌슨과 자라에게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닥쳤다.
힌슨은 자라가 좋아하는 장애물 넘기 놀이 훈련 센터에 다니던 중 한 직원으로부터 자라가 영국에서 키울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된 핏불테리어 종 같다는 말을 들었다.
영국은 금지된 견종을 허가 없이 키울 경우 경찰이나 지역 담당 공무원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개를 데려갈 수 있다. 개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 문제로 법정까지 갈 경우 주인이 금지된 견종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키울 수 있다. 만약 금지된 견종을 허가 없이 키운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주인은 매우 큰 벌금을 물거나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고, 개는 목숨을 잃게 된다.
힌슨은 절망에 빠졌다. 안락사 당할 위기에 처한 자라를 입양했는데, 경찰에서 핏불테리어란 이유로 자라를 뺏어가 안락사 시킨다 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희망은 자라를 키울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이 허가는 금지된 견종이라도 공공에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특별히 법적으로 면제해주는 것이다.
힌슨은 먼저 자라의 견종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에게 정식으로 평가를 받는 절차를 밟았다. 견종 평가는 머리 모양, 개의 등 길이와 키 높이의 비율, 꼬리와 흉곽의 모양, 다리 비율, 피모타입 등 약 50개의 항목을 측정해 결정된다.
평가 결과 안타깝게도 자라는 정말 핏불테리어 종의 개가 맞았다. 힌슨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다시 결론이 날 때까지 자라가 무기한 케이지에 갇혀있어야 했기에 포기했다. 반면 결과를 인정하면 재판 당일까지 자라와 함께 있을 수 있고, 공식 허가를 받게 되면 그 후 허가 번호를 자라의 다리 안쪽에 새길 때만 잠시 떨어져있으면 됐다.
다행히 법원은 자라를 키울 수 있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자라는 집 밖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입 마개와 목줄을 하고 있어야 했다. 반려견 놀이터에서 다른 개와 어울리거나 좋아하는 장난감을 갖고 놀 수도 없었다. 심지어 차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자라는 곧 안락사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힌슨은 항상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여러 제약 때문에 자라와의 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 예상한 힌슨은 자라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여러 집들을 물색한 끝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큰 펜스까지 쳐져 있는 집을 찾아 시골로 이사했다. 덕분에 자라는 넓은 집에서 입 마개와 목줄 없이 뛰어 놀 수 있게 됐다. 함께 놀 수 있는 ‘윌프’라는 남동생도 생겼다.
“자라는 윌프와 함께 미친 듯이 들판을 뛰어 놀고 장난감으로 보이는 건 뭐든지 갖고 놉니다.”
자라가 자유롭게 들판을 달리는 사진은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주최한 ‘가장 행복한 개’경연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자라의 행복한 모습은 페이스북 페이지 ‘자라의 모험’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맹견을 키우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특정 견종에 대한 법률(Breed-Specific Legislation)’은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도 시행하고 있으며 수년간 반려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은 특정 견종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는 법은 없으나 동물보호법 제13조에 의해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도사견 등 맹견을 데리고 외출할 때 입 마개와 목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송아 동그람이 에디터 badook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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