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에게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려다, 순간 입을 꾹 닫았다. 인사가 조진웅에겐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최근 몇 년간 조진웅의 부재나 공백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조진웅 영화’는 ‘또 다른 조진웅 영화’로 대체되고, 그 영화는 곧이어 ‘조진웅 드라마’로 연결되는 식이었다. 지난해는 영화 ‘허삼관’에서 시작해 ‘장수상회’와 ‘암살’로 바쁘게 이어졌고, 올해는 tvN 드라마 ‘시그널’로 포문을 연 뒤 영화 ‘아가씨’와 ‘사냥’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정의로운 형사에서 변태적인 노인으로, 다음엔 욕망에 사로잡힌 엽사로, 캐릭터를 쉼 없이 변주했다. 공백 없이 꾸준하면서도 늘 새롭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진웅은 이를 자꾸 해낸다.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아무래도 다작할 팔자인가 보다”라고 껄껄 웃었다. “연기를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5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쉬지 않고 연기를 했다는 건, 그 자신을 현장에 고스란히 바쳤다는 뜻이다. 대학 시절부터 극단 생활을 했던 조진웅은 지독한 ‘현장주의자’다.
“연극할 땐 연습실에서 살았어요. 놀 때도 연습실에서 놀고, 연애도 연습실에서 했죠. 연극 사조도 책이 아닌 현장에서 경험으로 깨우쳤어요. 한번은 극단 레퍼토리 준비와 학교 워크숍 연출까지 동시에 세 작품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학점이 가장 좋았어요. 역시 현장에 있어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
아무리 현장을 사랑한다지만, ‘사냥’(29일 개봉) 같은 영화 현장이라면 좀 꺼려질 법도 하다. 몸 고생이 훤히 보인다. 우연히 발견된 금맥을 독차지하려는 엽사들과 탄광사고 생존자 기성(안성기)의 추격전을 그린 이 영화에서 조진웅은 엽사 동근 역을 맡아 시종일관 산자락을 뛰고 구른다. 평소 산이라면 질색하던 그였지만 ‘사냥’ 현장에선 투정을 부릴 수가 없었다. 안성기 때문이다. “선배님은 가장 먼저 촬영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시는 분이에요. ‘안 힘드시냐’고 물어도 ‘괜찮다’고 하시죠. 체력이 진짜 대단하세요. 후배들이 지쳐서 쉴 때도 선배님은 더덕 캐러 가실 정도니까(웃음).”
조진웅은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도 들어갔는데 하나도 안 추워 보여서 아쉽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로 돌아서서 말했다. “어느 작품이든 쉬운 현장은 없다”고. 그러면서 ‘시그널’을 예로 들었다. 드라마가 미제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탓에 정신적으로 힘에 부쳤다는, 뜻밖의 고백이다. “아직 나이가 많지도 않고 아이도 없는 신혼인데, 한참 즐거워야 할 때에 내가 이런 상황까지 경험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상하면 더더욱 감당이 안 되더군요. 홀로 많이 울었어요. 촬영을 마치고 집에서 가볍게 술을 마시면서 그 괴로움을 풀어내는 수밖에 없었죠.”
자주 얼굴을 비추면서도 새로워 보이는 비결은 무엇일까. 조진웅은 “작품마다 다르게 보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고 했다. 살을 빼야 하는 상황이면 ‘이 살을 썰어버릴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할 정도로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조직폭력배 같은 ‘특수업종’ 사람들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특별한 주사 같은 게 있어서 캐릭터의 DNA를 제 몸 속에 집어넣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할 때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듯, 연기를 할 때도 그냥 그 인물이 돼버리는 거죠. 그러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요.”
요즘엔 tvN 드라마 ‘안투라지’를 찍고 있다. 매니지먼트사 사장 역할인데,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파닥거리는 인물”이다. “대사의 분량이 지하 8층에서 옥상까지 꽉 차있는 느낌”이라며 조진웅이 한껏 들뜬다. “이렇게 즐길 수 있는 현장을 만나기 쉽지 않아요. 정말 신나게 촬영하고 있어요. 오늘 정선에서 한창 촬영 중일 텐데, 저도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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