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시 날씨를 투정한 적은 없었다. 비는 오히려 선호하는 편이다. 맑은 날씨보다 비 오는 날은 핑계 대기 좋다. 이렇게 비 내리는 날에는 숙소에 콕 박혀 책이나 읽는 거야! 어찌 보면 전 세계 노동법을 파괴하는 주 7일제 여행의 값진 선물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재수가 더럽게 없어도 비에 책임을 물 수 있었다.
그리 좋아하는 비도 너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남미 여행 시 고도와 지리 여건상 하루 만에 여름이 겨울로, 겨울이 여름이 되는 계절 변속은 견딜만했다. 하나 비는 달랐다. 가뜩이나 멕시코는 6월부터 8월까지 한 달 20일 이상 장마의 은총을 듬뿍 받는 나라다. 탕탕이 빛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 때깔을 알려준 탓에, 이미 찌푸린 날씨에조차 신을 원망하는 사도 요한이 된 상태였다. 아예 비 때문에 카메라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신을 저주했다.
멕시코의 동부 꼬리뼈에 있는 플라야 델 카르멘이었다. 히피들의 천국이란 왕년의 명성은 사라지고 칸쿤과 더불어 카리브해 관광의 성지로 부상한 곳이다. 제2의 미국 같았다. 뉴욕을 찬양하듯 불야성의 5th Ave가 있고, 대부분 상점과 레스토랑에선 달러가 적극 통용되었다. 우리의 기대는 이보다 마야인의 자취인 근교 툴룸 유적(이하 툴룸)에 있었다. 툴룸은 12m 가파른 절벽에 몸집을 세워 카리브해의 오션 뷰를 독차지한 마야인의 마지막 해상무역 도시다. 기념엽서는 캔버스가 된 하늘과 바다의 청초한 자태와 마야 건축물의 강렬한 존재감이 어우러지는 황홀경을 이루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이 불러온 전염병으로 매몰차게 버려진 내상을 이토록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건가. 완벽해 보이나 그 내장된 결핍에 끌렸다. 우린 유적지를 갈 때마다 날씨 운 하나는 기막혔다. 그 엽서보다 나은 사진이 우리 것이 될 거야, 으흐흐. 소유의 광기를 일으켰다.
하늘에 푸른 꽃이 피었다. 푸른 꽃이 툴룸 쪽은 아니었으나 최악의 날씨를 상상할 수준은 아니었다. 매표소로부터 동굴 같은 숲길을 굽이치자 계단을 따라 바람을 역행하는 몸싸움이 시작됐다. 요상한 기대치는 오르는 만큼 쌓여가고 밀림의 어둠에서 하늘의 빛에 온전히 몸을 내어줬다. 그때다. 이건 탈출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어느 낯선 지표면, 그곳에 수 놓인 식물의 깊은 생명력, 그리고 카리브해가 몰고 오는 바람의 결과 그리움의 짠 내까지, 그곳의 땅과 바다와 하늘을 잇는 건 그 시각 그 자리에 선 여행자였다. 망부석이 되었다. 툴룸의 첫인상은 이 땅의 사진가를 몰살시키는, 그 어떤 감탄사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툴룸’이었다. 망부석의 전설을 깬 건, 빗방울이 콧잔등 위로 툭 떨어진 그때였다.
"2분 후면 폭풍우가 몰아칠 거야!"
째지는 듯한 탕탕의 외침이 30초 후 현실이 되었다. 눈을 감고 뛰었다. 회오리 치는 비바람이 정신까지 휘감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허둥대는 엉덩이만이 겨우 시야에 잡혔고, 그 무리에 나 역시 끼어있었다. 전쟁통의 피신 상황이었다. 입장 전 익혀둔 지리는 무색해지고, '들어가지 마시오'의 핀투라 무랄(벽화가 있는 건축물) 안쪽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생전 마이클 잭슨이 사랑했던 검고 큰 우산을 쓴 직원은 삑삑 호루라기를 불며 퇴장 조치를 내렸다. 스페인어 경고는 처음 듣는(!) 듯한 멕시칸 커플은 초절임된 겉옷의 빗물을 짜내고 있었다. 결국 오후 2시 반 입장, 3시 반 퇴장이었다.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완벽히 물러난 길,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툴룸이 속한 유카탄 반도는 열대성 태풍으로 관광 산업까지 위협받는 지대란 정보를 그제야 읽었다. 분노보단 오기가, 오기보단 열정에 가까운 정복욕에 휩싸였다.
매의 눈으로 기회를 노렸다. 해만 뜨면 ‘툴룸 가자’가 자동반사 문장이었다. 그로부터 5일 뒤 날씨는 그간의 부채를 청산하듯 맑고 깨끗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갔다. 그런데 수상했다. 서부극의 모래바람만 날리는 이 황량함. ‘입.장.금.지.’ 어제 비 때문에 물이 허리춤까지 차올랐단다. 버스 기사는 이 사실을 몰랐던 걸까? 문지기 몰래 범죄를 저질러야 하나? 그러나 카메라를 잠수시킬 용기가 우리에겐 없었다.
이후 매일 툴룸 소식을 플라야 델 카르멘 여행사에 문의했다. 이틀 후쯤 열렸단다. 해가 보일락 말락 한 하늘에 반신반의하며 버스에 올랐다. 가는 중 비는 쏟아지고, 우리와 툴룸은 원수지간이라 여길 때쯤 빗방울이 얇아졌다. 열긴 열었나 보다. 관광버스가 지척이었다. 입구로부터 매표소까지 물이 차올라 경운기 열차 탑승이 필수였다. 기나긴 줄에 애를 태우다가 묘수가 떠올랐다. 말하자면 불법이었다. 쪼그라진 간을 숨긴 채 출구 쪽으로 발을 들였다. 유니폼 입은 직원, 즉 우리의 허들이 출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쯤 되면 밑져야 본전이다. 여전히 비에 너덜거리는 7일 전 입장권을 선보였다. “(오늘) 왔는데 다시 보고 싶어 돌아가는 거야”라는 B급 연기에, "Ok!" 스페인어의 오케이도 오케이였다.
결국, 마야 문명의 시대로 거꾸로 가듯 역행했다. 당 시대의 왕궁과 신전, 집터 등의 화려한 빛깔이 사라진 잿빛 유적지를 유유히 걸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노동의 때는 걸으면서 수집된다. 툴룸은 ‘자마(Zama)’로도 알려졌다. 태양의 빛을 가장 먼저 받는 ‘새벽의 도시’란 서정적 표현이다. 엘 카스티요가 내려다보는 카리브해는 역사와 빛깔에 홀린 청춘들로 성황이었다. 바람이 흔든 야자수가 파도 소리에 부서지며 가슴을 저민다. 속절없이 좋았다. 이토록 황망한 툴룸 입성이라니, 이것은 삼고초려인가. 우릴 21세기 유비라 불러준다면.
p.s 탕탕은 입장권을 검사한 그 직원이 글을 못 읽는 것 같다는 이상한 추리를 했다. 날짜는 숫자가 아닌가?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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