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을 봉황이라 속이고 주인 없는 대동강 물을 제 것이라 우겨도 철썩 같이 믿게 될 것 같다. 그 사기꾼이 유승호라면 말이다(영화 ‘봉이 김선달’). 최근엔 천냥 빚을 갚고도 남을 수려한 언변으로 떼인 돈을 받아다 주겠다는 사기꾼(서인국)도 등장했다(OCN 드라마 ‘38사기동대’). 몰라서 속고 알아도 속는 사기극에 관객과 시청자는 꼼짝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매력적인 사기꾼의 한바탕 사기극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최근 들어 부쩍 눈에 띈다. 대동강 물을 팔아 거금을 챙긴 김선달 설화를 재해석한 ‘봉이 김선달’이 내달 6일 개봉을 앞두고 있고, 마술사기 범죄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던 ‘나우 유 씨 미’의 속편 ‘나우 유 씨 미2’도 내달 13일 관객을 만난다. 지난 17일 방영을 시작한 ‘38사기동대’는 고액 체납자에게 사기를 쳐서 체납 세금을 받아내는 사기꾼과 공무원의 활약을 그린다.
주인공의 스펙은 완벽 그 자체다. 명석한 두뇌와 두둑한 배포, 언변과 순발력, 위트, 재치, 변장술까지 모든 걸 다 가졌다. 이 재능에서 파생될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사기꾼 캐릭터는 그 자체로 ‘오락성’을 담보한다.
이들에겐 외모도 재능의 일부다. 호감 가는 외모로 상대의 경계심을 허무는 것이 사기의 첫 단계다. ‘봉이 김선달’의 주인공 김선달(유승호)은 양갓집 규수 뺨치게 예쁜 여장으로 혼인을 빙자해 돈을 뜯어낸다. ‘38사기동대’의 양정도(서인국)도 교도소에 가둬두기엔 아까운 ‘꽃미남’으로 그려진다. 올해 초 97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사외전’에서 전과 9범 사기꾼으로 분한 강동원은 외모가 곧 ‘사기’였다. 외모는 캐릭터의 오락성을 극대화하는 요건 중 하나다.
패거리 없이 사기극은 성립되지 않는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듯, 사기판을 크게 벌이려면 손발 맞는 동료들이 필요하다. 김선달 곁엔 위장술의 대가 보원(고창석), 눈치 100단 선무당 윤보살(라미란), 사기계의 꿈나무 견이(시우민)가 있다. ‘38사기동대’에도 천재 해커(고규필), 자금줄(송옥숙), 대포 전문가(허재호) 등이 속속 합류한다. 저마다 특기가 다 달라서 캐릭터 플레이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오션스 일레븐’ ‘도둑들’ ‘암살’ 같은 케이퍼 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사기꾼들의 작당모의에 당하는 이들이 절대악, 절대권력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봉이 김선달’에는 왕까지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 성대련(조재현)이 등장하는데, 한국사회의 부패한 재벌과 정치 권력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한 권력자가 고작 사기꾼의 속임수에 넘어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박대민 감독은 “돈으로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성대련 캐릭터는 현실 세계에 대입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악당들이 있는데, 사기를 통해 악당을 통쾌하게 깨부수는 쾌감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기꾼들이 절대권력과 싸우는 동기가 단순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다. 현실이라면 사기죄로 쇠고랑을 찼을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응징하는 이야기 구조가 정의로운 캐릭터의 영웅담보다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한국 관객들은 오락물이어도 사회 풍자가 가미됐을 때 훨씬 더 감정 이입을 한다”며 “권력을 응징하는 사기꾼의 활약을 ‘의적’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창 제작 중인 영화들 중에도 사기극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 꽤 많다. 사회상을 반영해 영화 속 사기의 내용과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임시완, 진구, 이동휘가 출연하는 ‘원라인’은 대규모 대출 사기를 소재로 다루고, 이병헌과 강동원, 김우빈 등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조의석 감독의 신작 ‘마스터’는 지능범죄수사대와 사기범의 추격전을 그린다. 현빈이 출연하는 영화 ‘꾼’은 4조원대 사기를 벌인 사기꾼을 소탕하는 검사와 사기꾼의 활약상을 담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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