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후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앞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참의원선거가 실시된다. 일본 정계에선 최근 눈에 띄는 변화들이 진행돼왔다. 자민당에 맞설 그나마 가장 큰 세력인 민주당이 합당을 통해 ‘민진당’으로 세를 불렸고, 공산당까지 포함해 4개 야당이 32개 1인 선거구(1명만 뽑는 지역구)에서 단일후보를 내는 데 성공했다. 민진당 정조회장인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櫻里) 중의원은 이달 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단일화가 흔하지만 일본은 여당이 하나가 되고 야당이 분열돼 민의와 선거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경험을 거듭했다”면서 “이번엔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본 야권이 최대 쟁점으로 띄우려는 것은 개헌선 저지다. 아베 정권이 3분의 2 의석을 확보해 평화헌법 9조 폐기까지 가는 악몽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선거전이 개시되자 아베 총리의 태도가 돌변했다. 개헌이 “지금 단계에선 100% 불가능하다”며 김빼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야권표 결집을 우려해 유권자의 경계심을 허무는 전략이다.
투표하는 입장에선 정권의 존속여부를 가르는 한 표가 흥미롭겠지만, 이번 선거가 집권당 교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일본은 중의원에서 과반수를 얻은 쪽이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성적에 따라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거대정당 자민당에서 다른 인물이 총리가 되면 일본의 색깔은 변화할 수 있다. 내각책임제 국가라지만 지금의 총리제도가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1998년 참의원선거에서 60석 확보가 예상되던 자민당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44석을 얻는 데 그쳤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즉각 사퇴하고 자민당 정권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시대로 들어갔다. 비슷한 일은 9년 뒤인 2007년 7월에도 벌어졌다. 여당은 참의원 121석 중 37석에 그쳐 제1야당인 민주당(60석)에도 못 미쳤다. 1차 아베 내각이 그 해 무너졌다. 이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베 총리는 목표의석을 낮춰 잡고 있다. 개헌발의 최소 조건인 78석은 함구한 채 공명당과 합쳐 과반선인 61석 달성을 내세우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번부터 투표연령이 18세로 내려갔다는 점이다. 240만명의 유권자가 새로 편입됐다.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선택을 통해 일본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이다. 작년 안보법 반대시위에서 젊은층이 활약했음에도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젊은이들의 보수화가 두드러진다. 20대의 현정권 지지도가 다른 세대보다 훨씬 높다.
아베 총리가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개성적 면모를 갖춘 지도자로서 젊은층에 어필되는 점이 한몫한다. 더욱이 장기 불황시대에 길들여진 일본 젊은이들은 대세에 순응하는 수동적 기질이 몸에 배어 있다. 특히 젊은층 보수화를 설명하는데 민족감정 유인론이 부쩍 인용된다. 중국이나 한국의 대일 강경자세가 일본내 내셔널리즘을 강화시켜 젊은층의 자민당 지지를 공고히 한다는 분석이다. 때마침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동중국해에선 중국발 해상위협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 선거 때마다 ‘북풍’이 불었지만 지금 일본에선 북한과 중국이 앞다퉈 일으키는 긴장국면까지 일본 집권세력을 적기에 도와주고 있다.
참의원선거는 정권을 선택하는 무대가 아니라 그간의 국정운영을 중간평가하는 의미가 크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국민에게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가려는 인상을 준다. 일본 유권자는 더이상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재임중 개헌이 목표라던 아베 총리의 구체적인 생각을 표를 통해 적극적으로 물어야만 할 것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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