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위해 인공 눈까지 뿌리는 멜버른 수족관 가보니…
멜버른 수족관은 2012년 방문 이후 4년 만이다. 당시 찍은 사진이 다 사라져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펭귄이 있던 곳만은 기억에 남았다. 대부분의 동물원, 수족관에는 자카스펭귄처럼 춥지 않은 환경에 사는 펭귄이 있다. 엄청난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극 펭귄이 있더라도 온도만 맞추고 나머지 환경은 가짜 얼음모형으로 대체하는 등 적절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곳에는 킹펭귄과 젠투펭귄, 그리고 새하얀 눈이 있었다. 게다가 젠투펭귄은 돌로 만든 둥지 위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눈앞의 사람들을 개의치 않은 채 알을 품고 있는 펭귄들의 모습을 보았다. 새끼들이 잘 컸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멜버른 수족관의 펭귄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거대한 가오리와의 만남
마침 도착하자마자 시간이 맞아 ‘비하인드 투어’를 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수족관의 뒷편을 보는 투어로, 한 사람 당 20달러(약 2만3,000원)였다.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큰돈이지만 수족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비하인드 투어는 하루에 2번이며 20~30분간 진행된다. 신청자는 둘 뿐이었다. 고든이라는 아쿠아리스트가 나와 가는 길에 주요 동물들을 소개해주었다. 그 중 Mr.G라고 불리는 250㎏의 자이언트그루퍼(Giant Grouper Fish)가 있었는데 해양에서 뼈가 있는 물고기로는 제일 커, 500㎏까지 자란다고 한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상어와 가오리도 있지만 이들은 뼈가 없는 연골어류이다. 이 물고기는 입이 굉장히 커서 상어, 어린 바다거북도 잡아먹는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획으로 인해 현재 멸종에 취약한 종(IUCN Vulnerable)이다. 잡은 사람들은 분명 다들 월척이라고 좋아했겠지만 이렇게 많이 사라질 줄은 몰랐겠지.
뒤편의 먹이 준비하는 곳을 지나 짧은꼬리가오리(Short-tail Stingray)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보았다. 하루에 몇 번 먹이를 주는 데 그 중 두 번을 비하인드 투어에 포함시킨 모양이다. 긴 막대기를 넣고 쳐서 소리를 내 먹이 주는 시간을 알렸다. 매일 이렇게 훈련을 한다고 한다. 가오리들은 머리가 좋아 소리를 들으면 바로 먹이를 먹으러 다가온다.
수족관의 아크릴은 26㎝로 매우 두꺼워 동물이 20% 작게 보인다고 들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앞으로 다가오는 가오리는 마치 영화 속 죠스 같았다. 게다가 꼬리도 수면 위로 빠르게 올라왔다. 자칫 맞을 것 같아 무서웠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뱀이나 악어를 보고 소리 지르는 걸 이해 못했던 내가 가오리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었다. 맘만 먹으면 뛰어올라 나를 물고 탱크 속으로 데리고 갈 기세가 느껴졌다.
물고기밥을 멀리 던져 다른 물고기들을 유인하는 동안, 고든이 두꺼운 장갑을 끼고 큰 물고기 조각을 부상한(왠지 떠오른다는 말보다는 이 단어가 어울린다. 쑤욱 위로 올라오는 가오리를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가오리의 입으로 던졌다.
몇 마리가 번갈아 왔고 그 때마다 크기가 나를 압도했다. 사진을 찍으려다가도 수면 위로 올라온 꼬리를 보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가오리 중 일부가 꼬리에 독을 가지고 있다. 가오리의 독침에 찔리는 경우는 모르고 밟았을 때가 대부분이다. 바다 속에서 만나 다가가면 가오리가 꼬리를 위로 드는 데, 이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이므로 물러나면 별 일이 없다고 고든이 설명했다.
호주의 유명한 방송인 ‘악어 사냥꾼’ 스티브 어윈(Steve Irwin· 1962-2006)이 떠올랐다. 그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던 중, 2m 너비의 가오리의 꼬리가 가슴을 관통해 죽었다. 며칠 후 사람들은 꼬리가 잘린 가오리들을 발견했다. 어윈에 대한 복수심 때문일지 모른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낚시꾼들이 가오리를 잡으면 독침을 피하기 위해 먼저 꼬리를 자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오리의 꼬리를 자르는 것은 불법이다.
얼마 전에 한 낚시꾼이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낚시로 가오리를 잡아 꼬리를 잘랐는데, 배를 눌렀더니 14마리의 가오리 새끼가 나오는 영상이었다. 가오리는 14~30세에 번식을 해 한번에 5~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영국 런던의 한 수족관에서는 2년간 수컷과 가까이 한 적 없는 두 마리의 암컷이 7마리의 새끼를 낳은 적도 있다. 적절한 때가 올 때까지 정자를 저장한다는 말이다. 이 수족관에서는 가오리들이 번식을 잘해서 어느 정도 크면 새끼들이 더 많이 생기기 전에 가오리들을 다른 수족관으로 보낸다. 얼마 전에도 수컷을 시드니로 보냈다고 한다.
탱크 안에서 큰 가오리가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보니 새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가오리가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서 날아다니는 듯한 영상을 본 기억이 났다. 마치 돌고래들이 뛰어 오르듯 가오리의 모습은 활기가 넘쳤다. 그 가오리는 쥐가오리(Manta Ray)였다. 수면 위로 3m가까이 솟구쳐 날 듯이 지느러미를 펄럭이고 큰 소리를 내며 수면을 치며 내려온다.
이 행동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암컷의 주의를 끌기 위한 행동이거나 의사소통 또는 기생충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라는 가설이 있다. 수족관은 이런 야생에서의 행동을 하기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천적으로부터 안전하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의 동물들은 야생보다 대체적으로 오래 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복지와 연결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야생의 서식지는 점차 사라지거나 오염되고 있고, 사람들은 제한된 환경에 있는 생물들의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야생과 야생이 아닌 삶,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일까? 가오리의 날갯짓을 보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수족관 공기가 빼앗은 목숨
수족관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2000년 1월 수족관이 문을 연 후, 4월 11일에서 27일에 수족관을 방문했던 60여명의 사람들에게서 레지오넬로시스(Legionnaires disease·재향군인병·냉방용 냉각장치의 냉각수에서 발생·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재향군인 대회에서 발생하였는데, 재향군인과 같이 나이가 들어 면역이 저하된 사람에게 감염되기 쉽다)가 발생해 두 사람이 죽었다.
이 질병은 레지오넬라 뉴모필라(Legionella pneumophila)라는 세균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렴이며 기침, 짧은 호흡, 고열, 근육통, 두통 등이 증상이다. 세균이 있는 미립자(mist)를 흡입할 경우 감염되고 사람 간에는 전파되지 않는다. 원인은 수족관의 오염된 냉각수였으며 이 사건 이후 수족관은 냉방 시스템을 전면 교체했다. 2004년 2월에서야 희생자들을 위한 보상이 결정되었다. 실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수는 더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 세균으로 인해 1984년 서울 고려병원 중환자실에서 4명이 사망했다. 자연스럽게 옥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달라진 씨 라이프(SEA LIFE)
멜버른 수족관은 2008년, 확장을 통해 킹펭귄, 젠투펭귄 전시장을 만들었다. 2012년에는 수족관의 소유가 멀라이언 엔터테인먼트(Merline Entertainments)로 바뀌며 800만 달러를 들여 씨 라이프 센터(Sea life center)로 이름을 바꾸고 2013년 9월 재 개장했다. 2012년 방문 때와는 달리, 수족관은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멜버른 수족관의 번식, 구조,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멸종위기종을 번식하고 바다거북을 구조해 야생으로 돌려보내며 해양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교육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각 구역은 서식환경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특히 각 구역을 설명하는 패널에 멜버른 수족관이 그 지역의 환경과 생물종을 위해하고 있는 일과 ‘해변에 가면 쓰레기 가져오기’, ‘맹그로브에 가면 정해진 길로만 다니기’ 등 관람객이 할 수 있는 일을 적어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바위사이웅덩이(Rockpools)’에는 누구든 만져볼 수 있는 터치풀이 있는데 실제 해안가 바위틈이서 볼 수 있는 불가사리, 해초, 조개껍데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충분히 좋아했다.
불가사리에게는 아이들의 손을 피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다른 수족관 터치풀에서 살아있는 멍게, 해삼, 두툽상어, 소라 등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러한 생물은 아이들이 너무 많이 만지는 통에 오래 살아있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으면 수산시장에서 또 사온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아이들에게 ‘먹거리’로서의 ‘해산물’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그 생물이 그럼으로써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야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서의 생명체’에 대해 가르쳐 주는 방법이 더 낫다고 여겨졌다.
열대물고기 먹이주기(Tropical fish feed) 설명회 시간에 맞추어 1층에 있는 열대우림 모험(Rainforest Adventure)구역으로 갔다. 거기에는 무릎 높이의 수조가 있었다. 아쿠아리스트가 먹이를 들고 나와 설명을 하며 손에 먹이를 집고 수조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바로 주지 않고 몇 초간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그 때, 갑자기 아래에 있던 물고기가 손에 물을 쏘았다. 물총고기(Banded archerfish)였다. 수족관의 물총고기들은 아쿠아리스트에게 훈련이 되어 있어, 먹이를 잡고 손을 내밀면 마치 직접 사냥을 하는 것처럼 손에 물을 쏘고 떨어진 먹이를 먹었다. 0.05초 만에 3m까지 물을 뿜어 곤충을 떨어뜨려 잡아먹는다는 이 물고기는 직접 물 밖으로 뛰어올라 먹이를 잡기도 하고, 새끼 물고기들은 작은 군집을 이뤄 이러한 사냥술을 배운다고 한다.
또 다른 새끼 펭귄을 만나다
환경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어 숨을 수 있는 대왕갑오징어(Giant cuttlefish)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위디해룡(Weedy Seadragon), 나뭇잎해룡(Leafy Seadragon)을 지나 펭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 안에서는 펭귄들을 위해 눈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역시 더운 날이었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펭귄들을 위한 낮은 온도 때문에 두꺼운 옷을 입었다.
2012년 방문 시, 때는 10월이었고 젠투펭귄(Gentoo penguin)이 알을 품고 있었다. 기존 연구 결과를 보면 야생의 젠투펭귄은 11월 경 알을 낳고 35일 정도 포란 후, 12월 경 부화한다. 멜버른 수족관의 젠투펭귄 번식 시기가 약간 빠르지만 야생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번식을 하는 것 같았다.
젠투펭귄의 새끼는 보이지 않았고, 펭귄들은 수영을 하거나 쏟아져 나오는 눈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먹이 주는 시간이 되자 일제히 젠투펭귄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쿠아리스트는 손바닥 크기의 오징어를 물로 던졌다. 지면에서는 뒤뚱뒤뚱 걸으며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던 젠투펭귄들이 물속에서 빠르게 수영해 잽싸게 오징어를 낚아챘다. 남극의 젠투펭귄은 크릴을 찾아 평균 35.8m, 최고 102.9m까지 잠수한다고 한다.
젠투펭귄이 알을 품고 있던 자리에는 두 마리의 갈색 솜털뭉치가 보였다. 새끼 킹펭귄(King penguin)이었다. 옆에는 부모로 보이는 킹펭귄이 붙어 있었다.
킹펭귄은 9~11월에 알을 낳고 55일 후 부화한다. 부화한지 약 1년 전후가 되면 솜털을 벗고 부모와 같은 모습이 되며 4월경 거의 다 자란다. 야생에서는 4월이면 겨울을 난 후이기 때문에 먹이를 잘 먹지 못해 몸무게가 줄어든다고 한다. 2016년 6월, 눈앞의 새끼는 솜털 때문인지 잘 먹어서인지 어미보다 더 크고 튼실해 보였다. 초기 연구자들은 새끼와 어미를 다른 종으로 착각해 털북숭이펭귄(Woolly penguin)이라고 불렀다.
해양 보전을 위한 수족관
젠투펭귄 새끼를 보고 싶어 갔던 수족관에서 킹펭귄 새끼를 본 기쁨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 전과는 다르게 ‘보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수족관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씨 라이프 트러스트(SEA LIFE TRUST)라는 환경보호자선단체를 만들어 해양보전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보호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시 방문한 멜버른 수족관에서,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수족관은 이미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멜버른 수족관은 2013년 12월, 멸종위기종인 붉은바다거북(Loggerhead seaturtle)을 구조해 2년간 자연 방사를 위한 치료와 적응훈련을 했다.
사람들은 바다거북에게 구조 지역의 이름을 따 ‘블레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4.5㎏이었던 어린 블레어는 20㎏까지 몸무게가 늘어 지난 1월에 씨 라이프 트러스트에서 기증한 위치추적장치(GPS)를 달고 따뜻한 호주 서쪽으로 갔다. 블레어는 멜버른 수족관이 치료해 자연으로 보낸 13번째 바다거북이었다. 바다거북이 사는 풍요로운 바다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더 많은 수족관들이 그 속도를 늦추어주길 바란다.
양효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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