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ㆍ임경택 옮김
사월의책 발행ㆍ204쪽ㆍ1만3,000원

지금이야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란 제목만 척 봐도 감이 온다. 자동차로 인한 외부 효과를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됐다는 촉구다. 자동차가 마냥 편리하고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사고, 매연, 복잡한 도로망 등 여러 문제점을 봤을 때 이제 자동차가 주는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큰 게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1974년, 일본의 자동차산업이 마침내 세계를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 이 주장을 내놨다면? 짐작하다시피 자동차 산업은 그냥 일개 제조업이 아니다. 철강, 전기, 수도 등 다양한 분야가 한 곳에 집적된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은 근대적 생산 체제의 상징이기도 하거니와, 그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매달리 밥줄만 해도 수만, 수십만을 훌쩍 넘어선다. 여기에다 자동차는 도시의 생체리듬, 대중의 욕망 등이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반론이 거셀 수 밖에 없다. 저자 역시 업계 이익을 수호하려는 자동차공업협회, 그리고 규제를 부과하는데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 운수성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책의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최근 들어서야 서서히 고가도로와 육교가 사라지고, 횡단보도를 보도에 맞춰 높게 만드는등 보행자의 부담을 줄여나가는 작업이 시작됐고, 미세먼지 때문에 자동차의 오염 물질에 대한 관심들이 커지고 있는 우리 상황에 비하자면 대단히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의 주장은 정책으로도 연결됐다. 저자와 평생 함께 한 편집자 오쓰카 노부카즈는 소개글에서 매연 등 자동차의 외부효과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없던 시절 이 책 덕에 일본에서 “배기가스 규제의 법령화, 자동차 엔진의 클린화, 도로의 정비 등이 잇달아 실현”됐다고 설명해뒀다. 대단한 성취다. 당시 정치권에 불고 있었던 ‘시빌 미니멈’(Civil Minimunㆍ시민의 안전하고 쾌적한 최소 생활 기준) 바람도 적당히 잘 탔다.
알다시피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의 개념은 1977년 등장했다. 그 이후는 아는 대로다.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환경규제가 필요 이상으로 가혹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40년이 지난 책이지만 2010년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선정한 ‘동아시아 인문서 100권’에 이 책이 포함된 이유이자, 한국에서 번역해 낸 이유이기도 하다.

자동차와 도로의 발달은 서로 꼬리를 문다. 차가 많아 도로를 넓히고, 그러니 다시 차가 많아져 도로를 넓힌다. 개발의 관점에서 선순환이라는 해석은 널리 퍼져왔지만, 삶의 질적 측면에서 악순환이라는 지적에 대한 얘기는 드물다. “보도 바로 곁을 스칠 정도로 건물이 가까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배기가스와 소음을 뱉어내며 잘리는 자동차와 회색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요즘 세워지는 최신 아파트는 담장을 없애고 폼나게 조경을 만들었다지만, 실제 걸어보면 보도가 너무 좁다. 걸으라고 만든 길이라기보다 거대한 성 주변에 파놓은 침입 방지용 해자 같은 느낌이다.
‘트럼프 현상’처럼 전체 사회의 보수화, 극우화 경향을 자동차 문화에서 구하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로 출퇴근해야 하는 교외에 섬처럼 고립된 채 사는 중산층이, 이런저런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동안 극우 방송인들의 주장에 노출된다는 얘기다. 체증으로 짜증나 있을 땐 복잡하고 정교하며 신중한 토론이나 정책 얘기보다 피아와 선악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단순 무식하고 피 철철 흐르는 투쟁적 이야기가 사람들을 더 쉽게 사로잡는다는 얘기다. 우리로 치자면 종편의 정치 만담 틀어놓고 얼씨구 박수치는 풍경을 떠올리면 된다.
은폐되는 것도 있다. 도로망 확충 때문에 “철도ㆍ버스 등 공공교통수단의 서비스 저하 또는 폐기”가 일어나는데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저소득층과 노인, 아이들, 신체장애자들”이다. 아이들과 노인들을 골목길 마음 편히 걷기 어려워졌고, 장애인들의 보행권 투쟁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저자는 자동차로 인한 쾌적함을 홀로 누리는 운전자들이 이 부담도 이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책에서 눈길을 끄는 건 저자 우자와 히로후미의 생애다. 수리경제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경제학에 입문했다. 오늘날 주류경제학의 뼈대인 일반균형이론을 완성한 왈라스를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았다. 최연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에게 발탁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1964년, 36살의 나이에 ‘자유시장의 메카’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논문도 탁월해서 “노벨경제학상에 가장 가까운 일본인”이란 평가까지 받았다. 경력만 봐선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근대 경제학자”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로 돌아온 뒤 완전히 돌아섰다. ‘시카고 보이스’이기를 거부한 ‘우자와의 회심’이라고도 부를 만한 것인데, 저자는 이 책을 쓴 뒤 ‘근대 경제학의 재검토 : 비판적 전망’ 등을 써내면서 아예 자기의 토대인 주류 경제학을 버렸다. 그래서 책 중반에 주류경제학 비판이 들어가 있는데 이게 제법 흥미롭다.
스위스 국민투표로 화제를 모았던 ‘기본소득’과 관련해 경제학계에서 논의해온 ‘역소득세’(negative income)를 거론하고, 역소득세는 최저생활 보장의 수준에서 그쳐야 하며 그 외 공공재 분야는 공공요금으로 강하게 통제해 인플레이션을 막아줘야 다시 역소득세에 들이는 돈 자체를 최소화하는 선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들을 내놓는다. 이건 사회보장과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잡기 위해 우리 흔히 ‘복지국가’하면 떠올리는 ‘가파르게 누진적인 직접세’가 아니라 간접세 위주 고세율 전략을 택한 스웨덴 모델을 떠올리게 하는 논법인데,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여다볼 만하다. 거기다 공공재를 공공요금으로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따로 돈 들이지 않고서도 국민의 복지에 기여하는 첩경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전기ㆍ가스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죄(?)로 평생 차를 사지도, 타지도 않았다 한다. “한번은 함께 술 마시다 전철이 끊겨서 택시에 강제로 태워 보냈더니 끝내 ‘미안합니다!’라며 부끄러워했다”는 게 편집자 오쓰카의 증언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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