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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르포] 폭우 속 투표, 영국의 미래는 시계제로

입력
2016.06.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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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혼란 속에 시작된 투표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운명을 가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23일(현지시간) 오전 7시 영국 전역에서 시작된 가운데 잉글랜드 남부 행글턴의 한 주택 앞에 "잔류인가 탈퇴인가?(IN OR OUT?)"라는 문구가 세워져 있다. 행글턴=AFP 연합뉴스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운명을 가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23일(현지시간) 오전 7시 영국 전역에서 시작된 가운데 잉글랜드 남부 행글턴의 한 주택 앞에 "잔류인가 탈퇴인가?(IN OR OUT?)"라는 문구가 세워져 있다. 행글턴=AFP 연합뉴스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운명을 가를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가 23일(현지시간) 일제히 시작됐다. 영국 유권자들이 EU탈퇴를 결정하면 유럽 공동체는 물론 전세계 경제 지형까지 요동치게 된다. 영국이 EU잔류를 선택하더라도 국민투표를 밀어붙인 캐머런 정부의 책임론을 시작으로 유럽 사회의 혼란은 계속될 수 있다. 때문에 투표 직전까지 국가를 양분시킬 정도로 격전을 벌였던 찬반 양진영도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크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투표 당일 아침 폭우가 쏟아진 런던에서는 유권자들이 우산을 받친 채 투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런던 서부 켄싱턴ㆍ첼시 자치구의 한 투표소 앞에서 만난 존 레먼(61)은 “가능하면 잔류 진영이 승리하는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곁에 있던 50대 주부는 “EU에 남게 되면 그 많은 난민은 어떻게 부양하느냐”면서 EU탈퇴 의향을 밝혔다.

찬반 양 진영의 팽팽한 세력대결 속에 투표결과는 예측불허 상태다. 투표 전날인 22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전망은 갈렸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잔류가 51%로 탈퇴(49%)를 앞섰다고 예측했고 오피니움은 탈퇴 의견이 45%로 잔류(44%)보다 우세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다수의 유권자들은 “브렉시트 찬반 캠페인이 혼란과 분열을 부추겼다”고 분노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불확실한 미래를 우려했다. 21일과 22일 이어진 TV토론회에 참석했다는 한 유권자는 “보수당이 우리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놨다”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집권 보수당을 비난했다.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일반 대중의 50%, EU 잔류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70%는 국민투표가 영국 사회를 더 분열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충격과 공포의 언어로 투표 캠페인을 진행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에서 배제됐다”면서 “투표 결과에 대해 정치권은 가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 찬반 양 진영의 대결은 영국을 완전히 둘로 갈라 놓았다. 때문에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양 진영의 대결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탈퇴와 잔류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고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EU와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예측했다.

유권자들의 우려는 실제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투표 결과 EU잔류가 결정되더라도 이민 문제와 막대한 EU분담금 문제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캐머런 정부는 책임론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EU탈퇴로 결정 나면 유럽공동체가 대혼란에 휩싸이는 것은 물론 세계 경제도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투표의 결과로 EU를 둘러싼 회원국 내의 갈등과 논쟁이 바로 일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인들이 EU탈퇴를 결정하더라도 영국이 즉시 EU를 이탈하는 것은 아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영국이 EU를 한번 탈퇴하면 영원히 아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재투표가 열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EU리스본 조약에 따라 영국과 EU는 최소 2년에 걸친 지루한 협상을 거쳐야 한다.

영국은 협상을 위해 우선 자체 탈퇴 프로세스를 만들어 EU에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EU 전면 탈퇴, 부분 탈퇴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포함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영국 여론이 EU로부터 충분한 양보를 받아냈다고 판단한다면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할 수도 있다.

과거에도 EU 회원국 중 국민투표에서 EU 관련 조약을 부결했다 일부 예외를 인정받고 재투표를 통해 가결로 선회한 경우가 있었다. 아일랜드는 2008년 리스본 조약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유럽이사회와 재협상 끝에 외교중립과 세금제도 불개입 등의 약속을 얻어낸 후 2009년 재투표해 가결시켰다. 덴마크도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안을 재투표 끝에 가결했다.

물론 협상이 지지부진해질 수도 있다. 런던정경대학의 싱크탱크인 아이디어스(IDEAS)의 팀 올리버 연구원은 “탈퇴의 개념이 다양하고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어 브렉시트 결정이 나더라도 영국이 출구가 어딘지 모른 채 유럽 로비를 헤맬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 기구에서 전면 철수하는 것부터 자유로운 이주노동은 유지한 채 EU 주요 기관을 탈퇴하는 것까지 브렉시트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영국이 2020년 총선 이후까지 협상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U잔류를 결정하더라도 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캐머런 총리를 비롯한 잔류 진영이 탈퇴측의 공세를 막기 위해 이민 제한이나 EU와의 분담금 재조정 등을 ‘유럽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영국이 잔류 후에도 EU와 재협상 테이블을 차리게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캐머런 총리가 탈퇴파의 반발로 당권을 잃고 조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케빈 페더스톤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투표가 EU 잔류로 결론이 나더라도 영국은 잠깐의 허니문 뒤 EU와의 관계 재설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런던에서는 국민투표 이후 분열이 지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22일 웨스트민스터 광장에서 만난 탈퇴 지지자 린다 러딤(60)은 “설령 투표 결과가 잔류로 나온다 하더라도 탈퇴파 정치인들이 힘을 모아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잔류 지지자인 레먼은 “투표결과가 탈퇴로 나오더라도 유럽과의 관계가 크게 변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런던=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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