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자체로 EU 리더십에 타격
英 탈퇴 땐 도미노 탈퇴 부르고
잔류해도 회원국들 요구 늘 듯
브렉시트 국민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향후 EU의 구심력은 현저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EU를 벗어나면 추가 탈퇴 요구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잔류하더라도 영국처럼 EU 탈퇴를 협상 카드로 내밀며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는 국가들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렉시트 논의로 ‘하나의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맹신이 깨졌다”며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EU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1993년 EU가 출범한 이래 회원국 탈퇴는 전무하지만,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가 EU 분열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U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난민 수용을 둘러싸고는 찬성하는 서유럽과 반대하는 동유럽이 첨예한 갈등에 직면했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는 가운데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는 안정된 성장을 보이며 경제적 격차가 벌어졌다. EU의 ‘자유로운 역내 이동’ 원칙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유럽 전역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는 추세다.
유럽 전역에 ‘반(反) EU 정서’도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EU 탈퇴를 주장하는 마린 르 펜 국민전선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부상했고, 네덜란드에서도 극우당인 자유당이 ‘넥시트(네덜란드의 EU탈퇴)’를 주장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EU에 ‘비호감’을 느낀다는 이들은 그리스 응답자의 71%, 프랑스 61%, 영국 48%, 스페인 49% 등으로 나타났다. 추가 탈퇴를 요구하거나 EU와 재협상에 나설 국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국의 EU 탈퇴는 연쇄 이탈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앞서 유럽의회 연설에서 “만약 영국이 떠나면 다른 국가들의 추가 탈퇴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EU가 안에서부터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덴마크 앤더스 라스무센 전 총리는 “브렉시트를 유일하게 환영할 국가가 있다면 바로 러시아”라며 “러시아는 브렉시트가 EU뿐 아니라 서구 사회 전체가 약화되는 것으로 여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이 잔류를 결정하더라도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EU는 지난 2월 영국을 달래기 위해 영국이 요구한 EU 개혁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EU 내에서 ‘특별지위’를 획득해 독자적인 정책 결정이 가능해졌다. WSJ은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카드를 꺼내 들고 떡고물을 챙겨 갔다”며 “다른 유럽 정치인들도 같은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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