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비용ㆍ기술 진입장벽 낮고
마니아층 폭넓어 수요도 충분
퇴직자 성공담 퍼지면서 열풍
도쿄 지역 라면 거리 4~5곳
성업 중인 라멘집 총 3만여 개
신규 점포만 年 3000개 달해
‘연매출 수십억’ 대박집 있지만
80%가 3년 못 버티고 폐업
‘삼계탕 라멘’ 등 연구개발 매진
한국에서 명예퇴직 후 치킨집을 차린다면, 일본에선 ‘라멘집’ 창업으로 승부를 보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의 라면에 해당하는 라멘이 일본의 국민음식이 된 지는 오래다. 서민음식을 대표하는 규동(소고기덮밥)체인 ‘스키야’ ‘요시노야’ ‘마츠야’등을 합친 것(약4,100개)보다 많은 3만여 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신규 점포만 연간 3,000여개의 이른다. 그러나 경쟁이 워낙 치열해 신규출점 3년 내 폐업하는 비율도 80%에 달한다. 반대로 3년을 버틸 수 있다면 생존확률이 크게 상승하는 셈이다.
도쿄만해도 주요 전철역 주변으로 라면 점포들이 빼곡히 들어선 라면 거리가 4~5곳이다. 첫째로 손꼽히는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와세다(早?田) 거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돼지뼈를 우린 육수를 국물로 쓰는 돈코츠라멘은 물론 쇼유라멘(간장라면), 시오라멘(소금라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미소라멘(된장라면)까지 유명체인점과 개인 창업 가게들이 한데 모여 사투를 벌이는 격전지라서 현지인들은 ‘격전구’라고 부르고 있다.
창업열기 후끈한 일본 라멘시장
와세다 거리로 들어서자 마자 대로변에서 ‘미쓰야도 제면’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4개직영점과 20개 지점을 운영하는 체인점으로 한때 서울에도 진출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매니저는 입사한 지 2년쯤 된 한국인 윤철희(31) 부점장. 라면에 워낙 관심이 많아 일본으로 건너와 취업했다는 그는 “의자가 7,8개 밖에 없는 점포들이 대부분”이라면서 “100개가 넘는 라멘집이 정직하게 맛 하나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마제소바’(비벼먹는 메밀국수)류의 전문집이 부쩍 늘었고 면을 찍어먹는 ‘츠케멘’이 한창 유행이라고 살짝 귀띔해 줬다.
라멘은 서민음식이기 때문에 경기를 많이 타지 않는 게 장점이다. 윤 부점장은 “근처에 학교들이 많아 개학하는 4월과 5월, 9월과 10월 장사가 잘되고, 방학시즌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손님이 줄어든다”면서도 “오히려 불경기일수록 외식을 하면 싼 음식을 찾게 돼 라멘의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하루 손님은 200명쯤으로 한달 매출은 500만엔(약5,500만원)을 웃돈다고 한다.
대박집은 2시간쯤 줄을 서서 기다려야 라멘을 맛 볼 수 있다. 윤 부점장은 “라멘 면발을 공수해오는 경우도 많지만 잘되는 집은 점포에서 직접 면을 만든다”며 “쫄깃쫄깃한 면은 제조법에 따라 차이가 크고 금방 소문이 난다”고 설명했다. 윤 부점장은 “일본인들은 2시간을 기다려도 크게 짜증을 내지 않고 도리어 줄이 길수록 기대감을 즐긴다”고도 했다.
일본에서 버블경제가 꺼지고 명예퇴직 바람이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 라면창업으로 신화를 쌓은 퇴직자 출신 성공담이 급속히 퍼졌다. 연간매출 수십억원을 자랑하는 신화의 사례들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라면창업 컨설턴트가 등장하는가 하면, 성공과 실패사례를 다루는 블로그나 동호회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라멘집 창업에 열광하는 이유는 창업비용이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스시(초밥)처럼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윤 부점장에 따르면 초기 창업비용은 1,000만엔(약1억1,000만원)~3,000만엔(약3억3,000만원) 정도다. 그는 “한국에서 창업하는 것보다 적게 든다”며 “도쿄는 지역에 따라 월세 차이가 커 외곽에서 창업하면 더 저렴하다”고 했다. 라멘의 원가가 낮다는 것도 창업열기의 배경이다. 1,000엔(약1만1,000원)짜리 라멘의 경우 200엔(약220원)이 원가이며 70%는 마진이라고 한다.
대박집의 비결은 엄선한 재료와 개발
일본인들의 특별한 ‘면사랑’도 명퇴 이후 창업 아이템으로 라멘이 최고로 꼽히는 이유의 하나다. 자신만의 맛을 연구하는 라멘 오타쿠와 전문가들이 즐비하다 보니 프랜차이즈 보다는 개인 점포로 승부를 보겠다는 창업자들도 많다.
그렇다고 아무나 대박을 칠 수는 없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내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윤 지점장은 “손님이 홀에 들어와선 기다리지 않게 5분에서 8분 안에 양질의 라멘을 만들어야 한다”며 “주방온도가 35도가 넘기 때문에 조리실 환경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다카다노바바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라멘 야마구치’에서는 또 다른 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라멘집이지만 여기 또한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이 퇴직 후 창업한 개인 점포다. 하야카와 토모아키(32) 점장은 “음식소재 하나하나의 맛을 잘 살려낸 게 인기의 비결”이라며 “이와테현의 세이류 와카토리라는 닭 품종이 있는데 고급품종만 써서 국물을 우려낸다”고 말했다.
좌석이 10여개에 불과한데 한달 매출은 최소한 500만엔(약5,500만원) 이상이라고 했다. 하야카와 점장은 “다카다노바바에선 한 달에 수십 곳이 개업하고 없어지는데 여기는 하루 250명 정도 손님이 몰린”면서 “독특하고 깊은 맛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국물과 면발개발에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하루 장사가 끝난 뒤에는 국물을 끓이고 실험라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하야카와 점장 또한 자신의 점포를 내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인근 ‘토리소바 난키치’가게의 다카이 하지메(38) 사장은 2014년 요코하마(橫浜)라멘박물관에서 열린 라멘대회 우승자다. 우승 부상으로 받은 창업지원금으로 점포를 열었다는 다카이 사장은 “도쿄 라멘격전구에서 나의 손맛을 시험해보기 위해 창업을 결정했다”며 “토리바이탕 소바라는 라멘이 대표작인데 한국의 삼계탕을 떠올려 국물 맛을 낸다”고 소개했다.
다카이 사장은 끊임없은 연구개발만이 살 길이라고 전했다. 그는 연매출 1,000만엔(1억원)이 목표라면서 “한 달에 한번씩 한정라멘, 계절별 재료를 넣은 라멘, 굴과 된장을 조합한 라멘, 설날에는 일본식 떡을 넣는 라멘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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