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가 쿠릴 4개섬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에도 잇달아 관계 개선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시아 패권경쟁을 벌이는 구도에서 사실상 소외된 러시아가 분쟁 당사국인 일본에마저 손을 내밀어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2차대전 종전 후 줄곧 이어진 양국의 대치국면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정부는 22일 도쿄에서 열린 고위급협의에서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 발사와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무대로 긴밀하게 공조키로 했다. 일본측 하라다 지카히토(原田規仁) 일러 관계 담당 정부대표와 러시아의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교차관은 도쿄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진행한 협의에서 이같이 뜻을 모았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라다 대표는 “무수단 발사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안보리 등을 통해 긴밀하게 협력하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강조했다. 당초 이날 협의는 러일간 평화조약 체결 협상을 위해 마련됐지만 당일 오전 북한의 무수단 발사란 돌발변수가 생기자 양측이 잠시 긴장을 풀고 북한변수를 연결고리로 찾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으로 싸운 러시아와 일본은 전후 71년인 현재까지도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일본측이 러시아가 2차 대전 종전후 실효지배중인 쿠릴 4개 섬의 ‘반환’을 평화조약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1855년 제정러시아와 체결한 러일통상조약을 근거로 시코탄, 이쿠룹, 쿠나시르, 하보마이 등 4개 섬이 자국영토임을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2차 대전 종전뒤 이들 섬을 합법적으로 귀속했다며 분쟁지역화 전략에 응하지 않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은 22일 쿠릴 4개섬 현안을 포함한 평화조약 체결협상을 작년 10월 이후 8개월만에 재개했다. 6시간 동안 진행된 협의에서 양측은 지난달 러일 정상간에 논의된 ‘새로운 접근방식’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6일 러시아 소치에서 진행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회담에서 처음 거론된 이 ‘새로운 접근방식’은 양측 모두 구체적인 내용을 함구하고 있지만 일본이 대규모 경제협력을 제공하고, 영토문제에서 양보를 받아내는 빅딜을 뼈대로 한 것이란 게 정설이다. 러시아는 경협과 함께 동북아 패권경쟁에서 일본의 지지를 얻을 기반을 닦고, 일본은 외교성과와 영토문제 해소라는 과실을 챙기는 셈이다. 오는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아베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하고, 푸틴 대통령이 연내 일본을 방문하는 방안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져 러일 양국의 화해 모드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spar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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