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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정글로 느껴져선 안돼… 긴 호흡으로 삶 준비하게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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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정글로 느껴져선 안돼… 긴 호흡으로 삶 준비하게 도와야”

입력
2016.06.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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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감정 성찰 방법 모르고 바쁘게 자라는 청소년들

자존감의 근원은 성적뿐

경쟁에 대한 두려움ㆍ좌절로

무기력ㆍ분노의 악순환 겪어

실패해도, 아무것도 안 해도

삶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교육 환경 속에서 인격은 성숙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우울이나 공황, 분노와 같은 감정조절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를 접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원인으로는 과도한 입시의 부담이나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왕따와 같은 폭력적인 또래문화 등이 많이 거론된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정신 건강은 점점 더 교육 당국의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의 대응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요주의’ 학생들을 ‘감시’하는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과 그 대책에 대해 지난 13일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현 교수는 “공부 말고도 성취들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부모나 본인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하지현 교수는 “공부 말고도 성취들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부모나 본인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실수하면 끝장난다는 두려움

“사실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는 것은 청소년 범위가 늘었다는 것과 상관이 있다. 지난 100년 사이에 영양 상태나 발육은 급속히 빨라졌다. 그 과정에서 어른과 소년의 사이에 청소년이라는 ‘낀 세대’가 생겼다. 동시에 제 몫을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알고 배워야 하는 것은 점점 더 늘어났다. 1인분이 되기 위해서 필수 옵션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가 굉장히 늘어났기 때문에 수련을 쌓아야 할 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1318이 1025로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10세에서 13세 사이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마음은 아직 소아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초기 이슈가 있다. 그 위에는 18~20세에서부터 25세 사이에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지는 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채우지 못해 갖게 되는 실망감과 좌절감으로 청소년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318 사이에서도 그 두 개의 문제가 혼용돼 있는 사람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게 최근의 청소년 문제다.”

이런 상태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자기감정을 어떻게 성찰해야 하는지 모른 채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자기감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그 경험에 비추어 자신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고 ‘감정의 깊은 것’을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이런 경험을 할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태에서 ‘바쁘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이 요동을 치면 그걸 다룰 수가 없게 되면서 문제가 벌어지게 된다.

“두 가지의 양상이 있다. 한쪽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있다. 성적도 상위권이고 집안도 중산층 이상인 경우가 많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많은 것을 넘어 지나치게 자녀를 ‘뺑뺑이’ 돌려서 키웠다. 흔히 말하는 ‘만든 아이들’이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기대로 가득 찬 눈으로 이들을 본다. 이에 대해 학생들도 순응을 잘 해서 잘 쫓아온 경우다. 학생도 나름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이들도 안다. 자기 자존감의 근원이 성적이라는 걸 말이다.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갈수록 이게 빡세다(어렵다). 그러니까 불안하고 예민해진다. 이들의 독특한 특징이 강박증이다. 어떤 일에 집착이 생기면서 통제가 안 되면 견딜 수가 없다. 늘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잘하고 싶고 잘 안 되거나 실수하면 끝장 날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모를 들들 볶든지 아니면 자기를 학대하든지 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성취를 하면 이 정도면 되었다고 만족하며 멈출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성취를 통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가쁘게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 그래서 80%까지 달성하더라도 충분하다는 생각보다는 ‘이 정도밖에’라는 생각부터 하면서 그 다음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하지현 교수는 이것을 “이대로 가면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이 늘 “아슬아슬하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기력과 분노의 악순환

“그 다른 한 편에 있는 것이 분노와 무기력이다. 이들은 늘 화가 나 있다. 정작 본인은 그 감정이 뭔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로 무기력하게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다. 2주에 한 번 병원에 오면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누워만 있든지 하고 밥은 한 끼 정도만 먹는다. 밤낮이 바뀐 상태로 지낸다. 친구를 가끔 만나면 꼭 술 마시고 싸운다. 그러면서 그나마 있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 분노 조절이 잘 안 된다. 세상에 대한 분노만 있다.”

무기력과 분노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화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고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만큼 또 화가 나면서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관계망은 점차 붕괴하고 있다. 친밀성의 영역에서도 지속 가능한 '안전한' 관계가 사라지면서 감정을 조절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취약해진다.

“청소년기 정신건강에서 등교 거부 이슈를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상당히 많다. 자녀가 등교를 거부하면 가장 당황하는 것이 부모다.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그들은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세대다. 그들에게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은 밥을 안 먹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병원을 데려가는 게 좋을지 놔두면 좋을지 고민하는 데 6개월이 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유급을 당할 상황이 된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학교가 ‘정글’이나 ‘공장’이라고 말한다. 정글로 생각하는 청소년은 가면 난 먹힐 것 같으니까 못 간다고 말한다. ‘공장’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학교가 공장처럼 돌아가는 그 미친 속도를 못 쫓아가겠다고 말한다. 이전처럼 학교 바깥에 더 재미있는 게 있다거나 돈을 벌겠다고 안 가는 게 아니다. 학교가 무섭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데 뭘 하겠다고 하면 너무 빨라서 쫓아갈 수도 없으며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잡아 먹힐 수밖에 없다고 여겨서 안 가는 것이다.”

1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의생명과학연구원 1층 로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하지현(사진 오른쪽) 교수와 문화학자 엄기호씨.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1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의생명과학연구원 1층 로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하지현(사진 오른쪽) 교수와 문화학자 엄기호씨.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안전한 사회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두부모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둘 사이에 걸쳐져 있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다. 가는 것도 아니고 안 가는 것도 아닌 청소년들이다. 부모와 교사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경우가 이런 학생들이다. 아예 명확하게 거부하거나 사고를 치는 경우라면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부모는 극복하라는 말만 한다. 교사들 역시 이런 학생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현 교수는 등교 거부의 명확한 원인을 찾거나 어떤 생각의 전환을 주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마법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것을 부모들이 못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상황과 경우에 따라 다르다.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생활에 질서가 필요한 경우에는 기숙형학교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본인의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한없이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삶을 살 수 있는 위치를 갖도록 도와주고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과는 만들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나, 자해를 하지 않고 그 흔적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 등 미래를 위해 ‘여지’를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하다. 나중에 자신이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사회에 진입하지 못해 더 좌절하게 되는 불상사는 막는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게 내가 청소년기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하지현 교수는 말한다. 자기 삶에 ‘여지’를 주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게 하다가는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통제에 대한 강박이 있는 청소년들은 그만큼 하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분노와 무기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집 밖으로 나와 활동을 해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당분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자기 삶이 안전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긴 호흡을 갖고 이것도 한 번 시도해 보고 자기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쪽이 있고 다른 쪽은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망하지 않고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비로소 자기 삶에 대해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야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이 사회에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문화학자

●하지현 교수는

196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생으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친 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했다. 2008년에는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청소년과 부모를 상담하면서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비정상이라 착각하는 정상인에게 시비도 가려준다. ‘정신의학의 탄생’과 ‘공부 중독’,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심야 치유 식당’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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