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물론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인식이 바뀐 건 아니지만요. 조합원 수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네팔 출신 우다야 라이(45)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의 표정은 담담했다. 법원의 판결만으로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단시간에 바꾸긴 어렵다는 걸 지난 1년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25일은 대법원이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합법으로 인정하며 노동 삼권을 보장하라고 판결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조 합법화 1주년을 나흘 앞둔 21일 서울 정동 민조노총 사무실에서 “합법화 이후 조합원이 150명 정도 늘어 현재 1,200여명이 가입돼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 지난 1년간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주노조의 정식 명칭은 서울ㆍ경기ㆍ인천이주노동자조합이다. 2005년 4월 출범 후 10년의 법정 투쟁 끝에 합법 노조로 인정받았고 지난해 8월 마침내 노동청으로부터 이주노조 설립 신고 필증을 받아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노조 간부들이 불법체류를 이유로 줄줄이 추방당하는 등 여러 이주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얻은 결과였다. 출범 당시 100여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이 1,000명을 훌쩍 넘어섰지만 국내에서 일하는 100만 이주노동자들의 0.1%에 불과하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이동이 잦아 노조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일하는 데 아무런 불만이 없어 노조 가입을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사업주에게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노조 가입을 꺼리는 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2005년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한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2010년부터 민주노총에서 이주노조 담당으로 일하기 시작하다 2014년 10월부터 위원장 직을 맡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위원장 제안을 받고 고민도 했지만 어차피 누구라도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는 3명인데 상근 전임자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을 비롯해 단 2명이다.
이주노조의 가장 큰 숙제는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꾸는 것이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사업주의 동의를 구하더라도 다른 사업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본국으로 떠나야 한다. 이주노동자 최대 고용 기간인 4년 10개월 동안 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면 3개월간 출국 후 다시 4년 10개월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한 번이라도 사업장을 변경하면 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사업장 변경만 자유롭게 할 수 있어도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라며 “제도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면 노조가 없더라도 노동 환경이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이들을 동반자로 여기는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업장에선 한국인 동료가 이주노동자에게 ‘너희들 때문에 우리들 월급이 떨어졌다’면서 폭언과 폭행을 하며 괴롭히는 일이 흔합니다. 사장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세워놓고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한 명만 때리는 일도 있어요.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일을 겪어도 참고 일해야 합니다.”
이주노조가 갈 길은 멀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도 바꿔야 하고 인식도 바꿔야 한다. 조합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도 산적해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국적을 초월해 한 뜻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인도 해외에 가면 이주노동자가 됩니다. 한국사람들이 애국심과 자존심만 내세울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도 기본적인 권리가 있기 때문에 요구하는 겁니다. 무조건 잘해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도 노력할 겁니다. 금방 바뀌진 않겠지만 계속 해나가야죠.”
글 사진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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