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의 핵심 브로커 이동찬(44)씨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정에 선 진모(61) 전 인천본부세관장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뇌물을 줬다는 이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23일 진 전 세관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진 전 세관장은 2007년 이씨로부터 금괴 밀수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3차례에 걸쳐 현금 4,500만원과 90만원 상당의 양주 2병, 에르메스 스카프를 받은 혐의로 2013년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의 쟁점은 증거는 없고 진술만 있는 상황에서 뇌물을 줬다고 시인한 이씨의 진술이 믿을 만한 것인지였다. 1심은 이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반면 2심은 “이씨의 진술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진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명확하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금괴 밀수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이씨가 선처를 바라며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씨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검찰에서 2심으로 갈수록 이동찬의 진술이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해졌고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점, 동거녀가 경찰인 점을 이용해 여러 사람의 수사ㆍ범죄경력을 불법 조회한 이력과 행실, 인간됨 등을 함께 살펴보면 그의 진술이 믿을 만한 것인지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유죄의 의심은 들지만 증거가 없어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금품을 받았다는 의심은 들지만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주는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씨 진술의 신빙성은 상당히 약해졌고 이씨 진술만을 내세워 함부로 다른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이씨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선처를 받았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공범인 금괴 밀수 조직원들에게 사건을 무마시켜주겠다며 금품을 받아 2012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지난해 5월 유죄가 확정됐다. 이씨도 당시 금괴 밀수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됐다. 재판부는 “이씨가 밀수한 금괴의 양이 약 955㎏, 시가 약 334억원에 이르는 규모로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고 중국으로 밀항해 태국에 체류하는 등 공소시효가 정지될 수 있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이씨 자신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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