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공무원.
국민이 공무원들을 비판할 때 쓰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다. 정치인과 언론이 공무원들을 비난할 때 즐겨 쓰기도 한다. 공무원들을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로 보기 때문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우리나라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특정한 권력과 집단, 개인의 봉사자가 아닌 국가와 국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두 가지 상반된 말이 공무원에게 쓰여 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일차적 책임은 공무원에게 있다. 사회가 공평하지 않고 국민의 삶이 어려울수록 공무원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 헌법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렇듯 공무원은 기업체 노동자와 달리 공공의 이익을 위해 종사하며 보수를 받는 직업인이다. 다시 말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공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게 복무했느냐가 직업인인 공무원으로서 노동의 가치를 부여받는 기준이 된다.
정부에서는 공무원을 인재(人才)로 인식하고 육성하기 위해 채용단계에서부터 교육훈련 등 인재개발 체계를 재정립하고 있고, 근무혁신을 통한 일과 가정 양립 정책을 펴고 있다. 공직의 전문성을 높이고 적극 행정을 장려하는 정책도 펴고 있다. 이런 인사정책의 방향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이 가고, 올바르게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는 공무원을 양성하는 인사행정의 철학 정립이 우선되었으면 한다. 공공성과 청렴성, 봉사성, 업무 생산성을 두루 갖춘 공무원 인재 양성은 공직 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헌법과 공직가치 교육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일반노동자와 달리 평시에는 재해와 재난 발생 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비상근무를 해야 하고, 전시에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헌신한다. 그러함에도 공무원에게 생활인으로서의 일과 가정 양립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근무혁신을 통해 저녁이 있는 삶을 공무원에게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직 현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눈치 보기 문화, 정치환경 등에 따른 소모성 대기근무, 잔업을 부추기는 구시대적 수당제도 등이 잔존하고 있다. 이를 바로 잡지 않는 상태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불가능하다.
또 공무원의 적극적 행정과 전문성은 많은 국민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적극 행정과 전문성을 장려해 왔다. 그러나 성과주의식 감사와 비리근절을 이유로 회전문식 인사를 유지하면서, 보신주의와 소극행정을 오히려 정부가 조장한 측면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공무원의 소신과 철학이 바로 서야 적극 행정이 활성화되고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특히 범정부 차원에서 부처별 칸막이를 타파하고 각종 법령과 제도, 관행 등을 손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마땅히 노동조합 등 공무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 공무원 인사정책은 물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 또한 당사자들과의 원활한 소통 여부에 따라 그 성과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발표하는 단계부터 공무원단체와 소통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데 바람직하고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목표로 세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미래지향적 공직사회 실현’은 소통에서 출발한다.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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