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 이경규(56)가 19년 만에 ‘코미디 무대’에 선다. 내달 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윤형빈소극장에서다. ‘예능 대부’가 오랜 만에 선보이는 코미디 공연의 이름은 ‘응답하라 이경규’다. 이경규가 코미디를 위해 무대에 서는 건 1997년 MBC ‘오늘은 좋은 날’ 코너 ‘별들에게 물어봐’를 끝낸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경규를 소극장의 코미디 무대로 이끈 건 후배 방송인 윤형빈이다. 윤형빈은 내달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홍익대 일대에서 열릴 코미디 축제 ‘제1회 홍대 코미디위크’(‘홍코’)를 기획하며 이경규를 섭외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윤형빈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코미디계 큰 형님이 바로 이경규 선배”라며 “코미디 공연의 부흥을 위해 기획한 축제인 만큼 이경규 선배를 꼭 무대에 세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경규를 다시 무대에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윤형빈의 제안을 받은 이경규도 처음에는 망설였다. 20년 가까이 손을 놓은 코미디를 다시 한다는 데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미가 좋다고는 하지만, 재미 없는 공연을 대충 꾸리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코너 ‘양심 냉장고’ 등 여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예능 대부’가 됐지만,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코미디언이어서다. 윤형빈은 “원래 지난해 12월 ‘홍코’와 별개로 ‘이경규쇼’를 먼저 무대에 올리려고 했는데, 이경규 선배가 ‘더 잘 만들자’고 해 미뤘다”며 “그 때부터 틈틈이 준비하다 이번 ‘홍코’에 이경규 선배의 코미디 공연을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뒷얘기를 들려줬다.
이경규가 ‘홍코’에서 직접 코미디쇼 공연을 하게 된 데에는 코미디 공연 확산에 대한 책임감도 컸다. 윤형빈은 “이경규 선배와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등을 같이 했지만, 내가 부탁했다고 이경규 선배가 (코미디 공연을)하실 분은 아니지 않느냐”고 웃으며 “이번 행사가 코미디언들의 공연 활성과 육성을 위해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 보고 참여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코’에서의 공연을 확정한 뒤 이경규는 다시 데뷔 시절로 돌아가 ‘연습 벌레’가 됐다. 그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능력자들’ 등 바쁜 스케줄에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후배들을 불러 코미디 공연에 선 보일 아이템을 다듬었다. 방송에서 녹화 시간이 좀 만 길어져도 “힘들다”고 툴툴대던 모습과 달라 윤형빈도 놀랐다고. “회의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게 윤형빈이 들려준 농담이다. 게다가, 이경규는 출연료도 따지지 않았다. 윤형빈은 “이경규 선배가 코미디 공연을 기획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연료(출연료)얘길 꺼낸 적이 없다”며 “공연만 잘 만들자는 말만 해주신다”며 고마워했다. 이경규가 수익도 생각하지 않고 ‘판’을 벌린 것이다. 200여 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이뤄지는 공연인데다, 후배 코미디언들이 TV 밖에서 설 자리를 넓히자는 데 의미를 뒀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응답하라 이경규’ 연출을 맡아 무대 위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다. 1994년 첫 선을 보였던 ‘별들에게 물어봐’를 2016년 버전으로 각색해 콩트를 선보이고, 특유의 거침 없는 입담을 바탕으로 한 ‘19금 토크’ 코너로 관객들과 격의 없이 소통한다. 이경규가 제작했던 영화 ‘복수혈전’ 속 절권도를 소재로 한 관객 참여 코너도 만들었다. ‘응답하라 이경규쇼’에는 이윤석, 윤형빈 등이 출연해 힘을 보탠다.
사흘간 진행될 ‘홍코’에는 ‘쇼그맨’(1일·KT&G 상상마당), ‘김영철의 조크 콘서트’(2일·KT&G 상상마당)와 ‘옹알스’(2일·디딤홀) 그리고 ‘이수근의 웃음팔이 소년’(3일·더 스텀프) 등 다양한 코미디 공연이 홍익대 일대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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