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20대 손예진은 멜로 여신이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애소설'(2002) '클래식' '여름향기'(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외출'(2005) '연애시대'(2006) '아내가 결혼했다'(2008) 등 수 많은 멜로 명작을 남겼다. 손예진의 30대는 도전이다. '공범' '타워'(2012)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나쁜 놈은 죽는다'(2016)까지 장르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도 손예진은 도전했다.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 연홍을 맡아 히스테릭한 감정들을 쏟아냈다. 한 스크린에 절절한 모성애부터 냉혹한 복수심까지 다채롭게 담았다.
-영화 색깔이 독특하다. 어떻게 봤나.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어떻게 영화화될지 정말 궁금했다. 연홍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나오다가 그 속에 또 다른 이야기 있다. 시나리오 순서에서 조금 달라졌지만 많이 친절해졌다는 느낌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충격적이었다.
"인생에도 반전이 있다. 아무리 친한 모녀 사이라도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뒤늦게 알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거지. 좋고 나쁘다는 흑백논리로 설명되기에 인생은 너무 복잡하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경미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전작 '미쓰 홍당무'를 봤기 때문에 조금 실험적인 스타일이라 생각했다. 영화가 흔히 볼 수 있는 쉬운 소재를 다루는데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풀지 않아서 좋았다. 이감독은 캐릭터가 어땠으면 좋겠다고 정확하게 말해준다. 감독 말만 따르면 되니 연기하는 입장에서 편했다."
-영화 시사 후 감독과 이야기 해봤는지.
"아직 안 했다. 같이 희로애락을 겪었기 때문에 말로 하기 힘든 지점들이 있다. 단순히 반응이 좋아서 연락하고, 좋지 않아서 연락 안 하고는 아니다. 마치 학창시절 수련회 다녀온 후 느끼는 끈끈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연홍을 연기한 소감은.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다. 자식 뒷바라지 하고, 남편 위해 선거운동 나서고, 자기 일 없이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이 연홍을 더욱 미치게 만든 것 같다. 연홍도 벼랑 끝에 몰리니 자해까지 했으리라 이해했다."
-연홍이라는 인물에 공감했나.
"처음엔 왜 보통 엄마들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보통 엄마'라는 것이 개인의 정형화된 틀이다. 세상엔 다양한 엄마가 있다. 그 중 연홍 같은 엄마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하는 감정연기가 어려웠을 텐데.
"연홍 감정에 너무 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쉬는 시간이나 밥 먹는 시간에는 농담하고 웃고, 카메라 앞에서만 돌변했다.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작업이었다. 이미 촬영하느라 예민해진 상태에서 체력까지 고갈되면 절대 토해내는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성애 연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엄마와 딸 관계에서 모성은 참 다양한 감정을 가진다. 애증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처럼은 안 살거야'하는데 내가 엄마랑 똑같이 하고 있는 거야(웃음). 친언니를 통해 그런 모성을 봤다. 함께 커온 자매가 엄마가 되더니 진짜 우리 엄마처럼 됐다."
-실제 어떤 모녀 사이인가.
"나는 엄마한테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한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할거야' 같은 뜬금없는 질문들 있잖아. 연홍과 딸 민진과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연기 하면서 실제로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별로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나약해지는 것 같다. 엄마가 사실 굉장히 강한 존재지만 아이 앞에선 가장 약자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엄마가 되는 일은 참 무섭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김주혁과 또 부부로 만났다. 진정한 비즈니스 파트너다.
"둘 다 기본적인 성격은 코믹하고 웃긴데 작품에서 비정상적인 부부로만 나온다. 7년 전 함께 찍은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도 나만 좋았던 스토리 아닌가. 이제 같이 재미있고 정말 웃길 수 있는 내용으로 찍고 싶다."
-극중 싸대기를 주고 받아 깜짝 놀랐다.
"(김)주혁 오빠 때리고 내 손이 빨갛게 됐다. 잘못 때려서 너무 미안했다. 또 여자가 남자를 삼연타로 때리는 게 드물지 않나. 주혁 오빠는 기술적으로 아파 보이도록 나를 때렸는데 나는 진짜 그냥 세게 때렸거든. 그런데도 오빠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연기했다."
-김주혁과 멜로를 해보는 건 어떤가.
"오래 본 사이인데 멜로의 감정이 생길까? 하하. 멜로 나도 하고 싶다. 많은 분들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20대와 다른 성숙함을 보여야 하니 더욱 신중해 진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계속 도전하는 느낌이다.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같은 것을 반복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또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 '비밀은 없다'는 내가 해보지 않은 연기 톤이었다. 나이가 더 들면 절절한 모성애도 해보고 싶다. 영화 '밀양'의 전도연 선배처럼."
-'비밀은 없다'는 어떤 의미를 두고 도전했나.
"연기적으로 두려움이나 주저함을 깨고 싶었다.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었고, 조금 다른 시각의 연기를 해볼 수 있었다. 관객 입장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보고 싶었다. 공감하거나 비판하거나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특별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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