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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상사와 붙어살며 야근도 밥 먹듯... 집 생각 간절해요

입력
2016.06.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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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인력 20~30%가 청년 층

아침 6시 출근 밤 10시 퇴근 일상

현지인이 “하루만 쉬자” 하소연

밀주 빚어 밤마다 몰래 마시고

챙겨온 한국 영화-예능 무한재생

운동 매달리며 외로움 달래

“또래 드물고 인터넷도 잘 안돼 가족 친구 보고 싶어 힘들어요”

중동 건설현장의 아침 조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동 건설현장의 아침 조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저는 이란 방문을 ‘제 2의 중동 붐’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이은 ‘중동 발언’을 계기로 정부가 청년들의 새 취업 돌파구로 중동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11월 해외취업 촉진 대책에서 선정한 15개 진출 유망국에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4개국을 포함하는가 하면, 해외건설 전문 마이스터고 운영 등을 통해 연간 5,000명 이상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미 중동에는 적지 않은 청년들이 나가 있다. 현재 중동에서 근무 중인 국내 건설 근로자(작년 6월말 기준 1만1,671명) 가운데 20~30%는 20~30대 청년층일 걸로 건설업계는 추산한다. 이역만리 중동 건설 현장에서 모래먼지와 극한 더위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동 2030’들의 좌충우돌 생활기를 들어봤다.

국내 건설사에서 파견된 중동 건설현장의 2030 세대가 하는 일은 대부분 공사현장 관리다. 이들은 공사의 세부계획을 세우고, 공사 진척도를 점검하고, 필요한 기자재를 발주하고, 공사가 더딜 경우 현장 노무인력을 재배치한다. 미장, 용접, 콘크리트 타설(일명 ‘공구리’ 치기), 철근작업 등 속칭 ‘노가다’ 업무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나 하도급 업체 내 현장 노무인력이 담당한다. 가끔 인력이 부족하거나 공사 진행이 더딜 때는 사무직 2030들도 직접 현장에 나가 ‘공구리’도 치고, 벽돌도 나른다고 한다.

365일 일일일… 중동도 ‘저녁 없는 삶’

중동 2030들이 꼽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아닌 ‘고강도 근무’다. 연간 2,057시간 노동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의 장시간 근로국인 ‘헬조선’을 피해 중동으로 넘어왔건만, 여기서도 여유로운 저녁은 없다.

중동 현장의 공식 근무시간은 점심 2시간(오전11시30분~오후1시30분)을 제외해도 오전6시~오후6시 사이 10시간이나 된다. 이마저도 정확히 지켜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밤 9~10시까지 초과근무가 이어진다. 기상시간이 대개 오전 4시30분~5시인 점을 고려하면, 꼭두새벽부터 한밤까지 종일 일만 하는 셈이다. 지난해 7개월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한 1차 하도급 업체 소속 박모(29)씨는 “공기 점검, 기자재 현황 등 공사진행 관련 주간ㆍ월간 보고서 마감이 겹치면 새벽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주말도 없다. 중동의 공식 휴무일은 금요일. 하지만 이날도 온전히 휴식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아랍에미레이트(UAE)에서 1년간 근무했던 A건설사의 양모(32)씨는 “1년간 금요일에 쉰 적은 5~6번에 불과하다”며 “일주일 내 야근의 연속이다 보니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은 ‘빨래 할 시간도 없다. 금요일만은 야간근무 좀 빼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형적인 인력 구성에서 오는 인간관계의 고충도 있다. 중동 건설 현장은 부장, 차장 등 관리직 비중이 대개 60~70%를 넘는다.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 현장에서 근무했던 B 중공업 김모(31)씨는 “파견 인력 11명(부장 6명, 차장 2명, 과장2명, 사원 1명) 중 사원은 나 뿐이었다”며 “삼촌, 아버지뻘 되는 고참들과 매시간 밀착 생활하는 탓에 일과 후에도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술로, 예능으로, 스포츠로 달래는 ‘오지의 애환’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2030의 ‘스트레스 해소법’ 혹은 ‘여가 활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알코올 의존형 ▦예능ㆍ영화 몰두형 ▦스포츠 중독형 등이다.

1인당 연간 알코올 섭취량이 세계 평균의 두 배(세계보건기구 작년 조사 기준)나 되는 한국인의 ‘술사랑’은 중동에서도 변함이 없다. 술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중동 생활의 애환을 달래는 셈이다. 박 씨는 “일주일에 3~4번은 무조건 술 마시고 잠을 잤다”고 전했다.

음주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등에서는 ‘싸대기(Sadeeqi)’란 이름의 밀주를 만들어 마신다. 쌀을 빚어 증류해 독한 소주 맛이 나는 술로 도수가 약 40도다. 냄새가 독해 과일 주스나 사이다 등 음료와 섞어 마시는데, 특히 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이 싸대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음주가 허용되는 이라크나 이집트에선 한국에 들렀다 나가는 길에 보드카나 양주 등을 사와서 같이 마신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예능 방송을 챙겨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2030도 많다. 중동에서는 인터넷을 현장 사무실에서만 이용할 수 있고, 속도도 매우 느린 탓에 자발적인 ‘공유 경제’가 이뤄진다. 이라크에서 8개월 근무했던 C 건설사 소속 장모(35)씨는 “IT팀 내 컴퓨터 한 대를 ‘전진기지’로 삼아 이 컴퓨터가 한국 영화나 예능을 다운 받으면 각자 숙소 내 개인 노트북으로 이를 공유해서 봤다”며 “인터넷이 워낙 느려 700메가바이트(MB) 영화 한 편 다운 받는 데 2~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통상 네 달에 15일 주어지는 정기 휴가 때 500기가바이트(GB) 외장하드에 예능과 영화, 드라마를 꽉 채워 돌아가서 다음 휴가 때까지 버티곤 했다”고 회상했다.

운동으로 사막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대개 건설현장 캠프에는 숙소 근처에 골프장, 스크린 골프장, 테니스장, 축구장, 족구장, 탁구장, 헬스장 등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마련돼 있다. 특히 골프장 이용 가격이 5만~10만원 수준이어서 “골프는 미리 배워놓으면 좋다”는 부장, 차장의 조언에 따라 골프에 몰두하는 2030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돼지고기가 금기시되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고단백질의 닭고기를 정말 많이 먹는 탓에 엉겁결에 근력운동(헬스)을 통해 근육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기도 한다. 양 씨는 “일주일 내내, 그것도 하루 3끼 중 1~2번 닭 요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유희’를 통해서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도저히 뿌리칠 길이 없다고 중동 2030들은 입을 모았다. 김 씨는 “현장에서 바다(홍해)가 보였는데 근무 중 우연히 바다가 보일 때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며 “또래 직원들도 거의 없고 개인 숙소에서는 인터넷도 안돼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차라리 휴일이 없는 게 낫다. 휴일이면 가족과 친구들 보고 싶은 마음에 너무 외롭고 힘들다”는 게 김씨의 회고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곽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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