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23일
베티 샤바즈(Betty Shabazz, 1934~1997)는 뉴욕 브루클린 주립대 간호학과에 다니던 22세 무렵 말콤 X(1925~1965)를 만났다. 당시 말콤 X는 일라이저 무하마드(1897~1975)가 이끌던 흑인 이슬람 국가주의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실질적인 2인자이자 ‘블랙 무슬림’운동의 선도자였다. 키 191cm 몸무게 81kg의 멋진 체구와 지적인 얼굴, 당당한 자부심으로 무장한 카리스마의 그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감리교 신자였던 샤바즈가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결혼도 하기 전에 성을 ‘X’(알 수 없는 아프리카 선조의 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알파벳)로 바꾼 데는 말콤 X 개인의 영향이 컸다.
샤바즈의 고향은 분명하지 않다. 그는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고 했지만, 그의 고교와 대학 기록에는 조지아주 파인허스트가 출생지라 기록돼 있다. 그는 미혼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잦은 학대에 시달렸다고 한다. 11살 무렵 사업가였던 로렌조와 헬렌 멀로이(Malloy)의 양녀가 된 것은 그로선 커다란 행운이었다. 양부모는 흑인들의 자활을 돕던 인권운동가였다. 다만 거친 어린 시절을 보낸 양녀에게 더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지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했다고 한다. 샤바즈는 훗날 “(양부모는) 인종 문제의 존재를 부정하면 마치 그 문제가 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처럼 언급 자체를 회피했고, 누가 그 문제를 거론하면 그를 ‘말썽쟁이’처럼 쳐다보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실’ 생활은 그가 로렌조의 모교인 알라배마 터스키기(Tuskegee) 대학에 진학하면서 깨졌다. 철저한 인종분리와 차별이 법(짐 크로우법)으로 지탱되던 때였다. 교육학을 전공해 교사가 되려던 샤바즈가 간호학으로 전공을 바꿔 뉴욕으로 옮긴 것은 학장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가 남부의 일상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 동료의 권유로 참석한 이슬람 예배장에서 그는 말콤 X를 만났고, 인종적 소수로서 각성하기 시작했다. 둘은 58년 결혼해 말콤 X가 테러로 숨지기까지 7년 동안 딸 6명을 낳았다.
40대 초반의 미국 무슬림 흑인 여성 샤바즈는 어린 딸들을 혼자 키우며 교육자로서, 흑인만이 아닌 아동ㆍ여성 인권운동가로서, 남편보다 훨씬 넓은 전선에서 더 힘든 싸움을 전개했다. 그는 10대 외손자가 지른 불에 화상을 입고 1997년 6월 23일 별세, 뉴욕 하츠데일 펀클리프 공동묘지의 말콤 X 곁에 묻혔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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