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ㆍ시리아 시아파 벨트와
터키ㆍUAE 수니파 라인 구축
“정파 아닌 경제가 핵심” 지적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패권 경쟁은 우리시대 새로운 냉전이 되고 있다. 미국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달 ‘이슬람의 신 냉전(cold war)’이라는 기사에서 이같이 보도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제된 이란이 국제 무대로 복귀하며 중동질서가 이란과 사우디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와 오랜 라이벌 관계다.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에 이어 중동지역에서 이란과 사우디가 냉전을 벌이며 글로벌 관심지역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한 이란은 시아파 진영인 이라크-시리아-레바논 등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고 세를 불리고 있다. 16억 무슬림 인구에서 시아파는 15%에 불과하지만, 이란은 8,000만명에 달하는 내수 시장과 세계 4위의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의 천연가스를 보유해 사우디를 뛰어넘는 경제적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최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와도 긴밀한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사회의 주요 파트너로 떠 올랐다.
사우디는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초 사우디는 이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아파 지도자 4명을 집단 처형했다. 격분한 이란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하자 사우디는 오히려 외교관을 내쫓고 단교하는 강수를 뒀다. 이어 사우디는 수니파인 바레인, 수단을 압박해 이란과 국교를 끊게 했다. 이란의 등쌀에 수니파인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도 이란 대사의 신분을 ‘임시 대사’로 강등할 정도다. 사우디는 터키-요르단-UAE로 이어지는 수니파 벨트를 강화해 시아파와 전선을 구축했다.
사우디는 이란에 대한 경제적 압박에도 팔을 걷어 붙였다.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들은 석유 공급 과잉을 해소해 연일 바닥을 치는 유가를 끌어올리길 원한다. 하지만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반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저유가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이 석유 수출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흥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저유가 정책은 사우디 경제에 폭탄으로 돌아왔다. 저유가로 세수가 줄며 사우디의 지난해 재정 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인 980억달러(113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한때 7,400억달러를 넘었던 외환보유액도 580억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올해 정부 지출이 20% 가량 감소하며 복지 혜택이 주는 등 국민들의 불만도 고조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의 오랜 우방이었지만 최근 이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 협상,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이란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이란과의 핵 협상으로 중돌 질서의 개편을 초래한 미국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어 양국 관계도 예전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국가들도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저울질 중이다.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수니파 산유국들은 사우디의 저유가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며 “사우디의 친 테러리스트(IS) 성향도 사우디의 리더십을 흔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학과 교수는 “수니파 국가들이 아직은 사우디에 끌려 다니고 있지만 내심 이란과의 협력을 원하고 있다”며 “사우디와 이란 갈등의 본질은 종파가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라고 설명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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