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C서울 최용수(45) 감독은 비와 궁합이 잘 맞는다.
선수시절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수중전에서 많은 골을 넣었다. 지도자가 된 후 감독 데뷔전인 2011년 4월 30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경기가 수중전이었는데 짜릿한 2-1 역전승을 챙겼다. 슈트가 흠뻑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려하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90분 내내 비를 맞아도 강철 체력이라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안산 무궁화FC의 FA컵 16강전. 전날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 이적이 확정된 최용수 감독의 고별전이었다. 5년 전처럼 한낮부터 소나기가 내렸다. 저녁이 되면서 날씨가 개, 온 몸으로 비를 맞는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휘했다.

경기 전 감독실은 수 십 명의 기자들로 북적였다. FA컵 16강전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A매치 같았다.
최 감독은 “착잡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시즌 중에 팀을 떠나기로 했으니 비난의 소지가 다분하다. 장쑤가 제시한 연봉 총액이 5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그런 조건이면 붙잡을 수 없다는 여론이 많지만 서울 팬들의 충격은 크다. 1년 전 비슷한 상황에서 최 감독이 한 번 거절한 적이 있어 이번 선택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 감독은 “1년 전에는 팀이 밑바닥이었고 지금은 안정이 됐다”고 차이를 말하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는 장쑤행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도전이다”고 밝혔다. “경쟁력 있는 선수들과 호흡하며 나를 채찍질하고 싶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재미있는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말할 때는 눈빛이 반짝였다. 장쑤는 중국 최대 가전유통회사 쑤닝 그룹이 인수한 뒤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최 감독은 “팀이 당장 결과만이 아닌 중장기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마음이 끌린 배경을 설명했다.
고별전 승리도 중요했다.
챌린지 1위 안산은 경찰청 복무를 위해 K리그 대표 선수들이 모인 만만찮은 팀이다. 이흥실(55) 안산 감독은 “최 감독의 중국행이 큰 이슈인데 우리가 들러리를 설 생각은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 감독은 자신의 후임으로 올 황선홍(48) 감독을 거론하며 “황 감독님께 8강이라는 선물을 드려야 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특유의 너스레도 잊지 않았다. 데얀(35)과 아드리아노(29)를 선발 명단에서 뺀 것에 대해 “토요일(6월25일)에 정규리그 포항 원정이 있는데 그 경기를 감안해 오늘 멤버를 아낄 생각은 없다. 필요하면 다 투입할 거다”라며 “황 감독님이 오셔서 왜 체력 안배를 안 했냐고 원망할 수 있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경기가 시작되자 서울 팬들은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의 영웅 최용수’라는 현수막을 걸어 떠나는 최 감독을 응원했다. 윤주태(26)는 전ㆍ후반 각각 1골씩 넣은 뒤 두 번 다 벤치로 가서 최 감독과 포옹했다. 서울이 2-1로 승리했다. 서울은 정규리그에서는 승점 30으로 전북 현대(승점 31)에 이어 2위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도 8강에 올라 있다. 최 감독은 황 감독이 ‘트레블’(AFC 챔피언스리그+정규리그+FA컵 3관왕) 도전을 이어갈 토대를 마련해놓았다. 22일은 최 감독의 지도자 데뷔전부터 정확히 1881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통산 138승70무58패의 기록을 남기고 떠났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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