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시간외 스마트기기 근무”
일주일에 11시간 추가로 일해
30% “월급 10%까지 반납 용의”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 발의
중견기업 디자인부서에서 일하는 박남규(32)씨는 몇 년 전부터 퇴근 개념이 사라졌다. 업무시간이 끝나 사무실을 나선 뒤에도 직장상사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해 수시로 업무지시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주에는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에 디자인 시안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라고 재촉했다”며 “잠을 자다 메시지를 확인 못하면 다음날 핀잔을 듣기 때문에 항상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야 한다”고 호소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하루 평균 1.44시간, 주당 11.3시간 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여가시간에 스마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월급의 일부를 반납할 용의도 있다고 응답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선 ‘카카오톡이 무서운 노동자들’ 포럼이 열렸다. 발표자로 나선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전국의 제조업ㆍ서비스업 노동자 2,402명(만 20~60세)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0.3%가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스마트기기로 업무 지시를 받거나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0분 이내로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일했다는 응답자는 27.1%였고, 30분 초과 1시간 미만은 9.8%, 1시간은 10.0%, 1시간 초과 2시간 미만은 8.6%였다. 2시간 넘게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한다는 응답자도 20.1%에 달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보는 시간은 평일 기준 평균 86분이었다. 휴일은 이보다 긴 95분(1.6시간) 동안 업무를 봤다. 평일과 주말을 모두 합치면 일주일간 11시간을 추가로 일한 셈이다.
이처럼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직장인들은 월급의 일부를 반납해서라도 스마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를 받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32.8%는 스마트기기를 통한 업무지시ㆍ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월급의 6~10%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다른 응답자들 역시 월급의 3%이하(30.1%), 3~5%(23.2%), 11~20%(8.6%), 21% 이상(5.2%) 등 액수만 다를 뿐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여가시간을 보장받고 싶어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기존 근로시간 개념으로는 스마트기기를 통한 퇴근 후 업무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고용노동부가 나서 관련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토대로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등이 지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퇴근 후 노동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독일은 2013년부터 업무시간 외에 상사가 직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거나 메신저ㆍ이메일 등으로 업무 관련 연락을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도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회사 이메일 발송 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노사협정을 체결했다.
한국도 ‘카톡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는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추진된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이날 발의했다. 이 법은 근로기준법 제6조 2항을 신설, ‘사용자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전화(휴대전화를 포함한다), 문자 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리는 등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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