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개봉한 한국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특별수사)의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다. 22일까지 67만4,659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았다. 상영 5일 만인 지난 20일 일일 흥행 순위 1위에 처음 올랐으나 대박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의 환호를 얻지 못하고 있으나 ‘특별수사’는 꽤 흥미로운 영화다. 재력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병폐에 메스를 대며 소소한 웃음까지 만들어낸다.
모범경찰 출신 브로커 필재(김명민)는 태생부터 눈길을 끈다. 아버지는 교도소를 안방 삼아 살았던 범죄자고, 할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아버지의 굴레를 벗기 위해 형사가 됐던 그는 폭력 경찰로 낙인 찍혀 조직의 버림을 받는다. 필재가 목숨 걸고 맞서는 인천의 거대기업 대해제철 여사님(김영애)은 혈통부터 다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부(富)로 지역사회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에 내세울 것은 머리 밖에 없는 남편을 수족부리듯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자신의 수하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천한 것들”이라며 경멸한다. 그들이 자기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이유가 돈이라는 걸 잘 알고 이를 제대로 악용하는 여사님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품격이 남다르다고 믿는다. 개인의 능력이나 인품보다 출신 집안으로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한국사회의 고질을 영화는 꼬집는다.
‘특별수사’는 할리우드 고전영화 ‘차이나타운’(1974)을 떠올리게 한다. 필재는 택시운전사 순태(김상호)가 누명을 쓴 살인사건을 캐다가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협박과 함께 필재의 코를 칼로 상처내기도 한다. 코에 반창고를 붙인 필재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는 모습 등은 ‘차이나타운’의 명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차이나타운’의 사립탐정 J.J(잭 니콜슨)는 한 남자의 행적을 쫓다 폭력배들과 마주하고 필재처럼 ‘코를 따인다’. ‘차이나타운’은 JJ의 은밀한 수사과정을 비추며 탐욕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이면을 들춰낸다. 돈을 위해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살인을 불사하는 한 재력가의 치부는 1970년대 미국사회의 어둠이다. ‘특별수사’는 그렇게 ‘차이나타운’에 ‘오마주’(경배)를 바치며 ‘돈에 돈’ 한국사회를 맹렬히 비판한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도 흥미롭다. 영화 속 인천은 돈이 좌지우지하는 음산한 도시로 묘사된다. 살인마저 돈으로 감출 수 있는 절대 금력이 지배하는 곳으로 할리우드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고담을 연상시킨다. 최근 한국영화의 상투적인 캐릭터가 된 비리 검사는 영화의 메시지를 명백히 드러낸다. 국가가 부여한 권위를 강조할 때나 “대한민국 검사”를 운운하는 장 부장검사(최병모)는 금력에 굴복한 공권력을 상징한다. 생쥐처럼 행동하던 장 부장검사의 꼬리가 밟히는 순간 영화가 전하는 쾌감은 최고치에 달한다.
‘특별수사’는 비포장도로를 차로 달리는 듯한 기분을 준다. 장면들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데 필재가 품은 야성이 흥겹다. ‘특별수사’의 묘미는 결국 영화보다 더 기가 막힌, 부조리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