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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천재 사기꾼 역 덕분인지 많이 능글맞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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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천재 사기꾼 역 덕분인지 많이 능글맞아졌어요"

입력
2016.06.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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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승호가 영화 ‘봉이 김선달’에서 재기발랄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또래 청년들처럼 밝고 유쾌한 유승호의 모습이 반갑게 느껴진다. 이정현 인턴기자
배우 유승호가 영화 ‘봉이 김선달’에서 재기발랄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또래 청년들처럼 밝고 유쾌한 유승호의 모습이 반갑게 느껴진다. 이정현 인턴기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어른들 틈에서 ‘배우’로 존중 받고 싶어 어른의 세상을 동경했다. 10대의 마지막 12월 31일, 시계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소년은 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맥주 한 병을 계산대에 내밀었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듯 말이다.

당당히 술을 마셔도 되고, 운전을 해도 되고, 이것저것 ‘해도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 해 겨울엔 대통령선거에서 난생 처음 투표라는 것도 해봤다.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아보는 것”이었다. 스무 살의 낭만은 아주 소박했다.

그 무렵 고민이 많아졌다. 드라마(MBC ‘보고 싶다’)에서 성인 역할을 소화하며 “몸에 밴 아역 연기 스타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다음 선택은 뜻밖에도 군 입대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우리 나이 스물넷. 그 사이 제대를 했고, 두 편의 드라마를 방영했으며, 이제 막 두 번째 영화를 개봉하려는 참이다. 상업영화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배우로서 무게감도 갖췄다. 듬직하고, 대견하다. 한 마디로 ‘잘 자랐다, 유승호’.

영화 ‘봉이 김선달’ 개봉(7월 6일)을 앞두고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승호는 어느 새 소년티를 벗어내고 그 나이에 맞는 ‘청춘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어요. 누아르 장르라든지 독한 악역은 안 어울리는 나이잖아요. 관객에게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던 때 이 영화를 만났죠.”

‘봉이 김선달’은 제목이 곧 스포일러다. 천재 사기꾼 김선달과 그 일당들이 대동강 물을 미끼 삼아 펼치는 한탕 사기극. 김선달 캐릭터는 할리우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참고해 젊고 섹시한 사기꾼으로 재창조됐다. 유승호의 발랄한 코미디 연기와 간드러지는 여장이 지난 21일 시사회 이후 화제가 됐는데, 그는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며 얼굴을 붉혔다. “김선달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지만 사실 저는 정반대 성격이에요. 매사 걱정이 앞서고 우울함에 빠져 있곤 해요. 최대한 밝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제 안의 틀을 깨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영화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 김선달의 호쾌한 활약상을 그린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 김선달의 호쾌한 활약상을 그린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억이 존재하는 어린 시절부터 유승호는 배우로 살았다.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했다. “외롭고 아픈 시간들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우울한 인물들을 연기하는 게 수월하다”는 그의 말에서 지난 시간의 성장통이 전해져 왔다. “저는 화를 내는 것보다 참는 게 편해요. 화를 내버리면 일주일이 불편해져요. 그런데 또 화를 참는 내 모습이 싫어지기도 하죠. 제가 왜 이럴까요(웃음)? 하지만 이 영화 덕분인지, 군대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많이 능글맞아졌다고 하더라고요.”

20대의 최대 관심사인 연애도 유승호에겐 아직 남의 일이다. “친구들이 ‘너 연애 안 할 거면 네 얼굴 좀 빌려달라’고도 해요(웃음). 그러면 저는 ‘네가 내 마음을 알겠냐’고 대꾸하죠. 사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를 좋아했었는데, 고백도 못했어요. 만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공부는 잘 되니’라고 말 붙여본 게 전부예요.”

서툰 감정 표현에 머쓱해하는 모습에선 풋내가 나지만, 연기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깊이 무르익었다. 군 제대 할 때 유승호는 “행복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의미를 다시 물었다. “연기는 누군가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잖아요. 그게 삶의 힘이 될 수도 있고요. 내 연기와 작품이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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