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어른들 틈에서 ‘배우’로 존중 받고 싶어 어른의 세상을 동경했다. 10대의 마지막 12월 31일, 시계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소년은 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맥주 한 병을 계산대에 내밀었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듯 말이다.
당당히 술을 마셔도 되고, 운전을 해도 되고, 이것저것 ‘해도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 해 겨울엔 대통령선거에서 난생 처음 투표라는 것도 해봤다.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아보는 것”이었다. 스무 살의 낭만은 아주 소박했다.
그 무렵 고민이 많아졌다. 드라마(MBC ‘보고 싶다’)에서 성인 역할을 소화하며 “몸에 밴 아역 연기 스타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다음 선택은 뜻밖에도 군 입대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우리 나이 스물넷. 그 사이 제대를 했고, 두 편의 드라마를 방영했으며, 이제 막 두 번째 영화를 개봉하려는 참이다. 상업영화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배우로서 무게감도 갖췄다. 듬직하고, 대견하다. 한 마디로 ‘잘 자랐다, 유승호’.
영화 ‘봉이 김선달’ 개봉(7월 6일)을 앞두고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승호는 어느 새 소년티를 벗어내고 그 나이에 맞는 ‘청춘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어요. 누아르 장르라든지 독한 악역은 안 어울리는 나이잖아요. 관객에게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던 때 이 영화를 만났죠.”
‘봉이 김선달’은 제목이 곧 스포일러다. 천재 사기꾼 김선달과 그 일당들이 대동강 물을 미끼 삼아 펼치는 한탕 사기극. 김선달 캐릭터는 할리우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참고해 젊고 섹시한 사기꾼으로 재창조됐다. 유승호의 발랄한 코미디 연기와 간드러지는 여장이 지난 21일 시사회 이후 화제가 됐는데, 그는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며 얼굴을 붉혔다. “김선달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지만 사실 저는 정반대 성격이에요. 매사 걱정이 앞서고 우울함에 빠져 있곤 해요. 최대한 밝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제 안의 틀을 깨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기억이 존재하는 어린 시절부터 유승호는 배우로 살았다.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했다. “외롭고 아픈 시간들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우울한 인물들을 연기하는 게 수월하다”는 그의 말에서 지난 시간의 성장통이 전해져 왔다. “저는 화를 내는 것보다 참는 게 편해요. 화를 내버리면 일주일이 불편해져요. 그런데 또 화를 참는 내 모습이 싫어지기도 하죠. 제가 왜 이럴까요(웃음)? 하지만 이 영화 덕분인지, 군대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많이 능글맞아졌다고 하더라고요.”
20대의 최대 관심사인 연애도 유승호에겐 아직 남의 일이다. “친구들이 ‘너 연애 안 할 거면 네 얼굴 좀 빌려달라’고도 해요(웃음). 그러면 저는 ‘네가 내 마음을 알겠냐’고 대꾸하죠. 사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를 좋아했었는데, 고백도 못했어요. 만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공부는 잘 되니’라고 말 붙여본 게 전부예요.”
서툰 감정 표현에 머쓱해하는 모습에선 풋내가 나지만, 연기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깊이 무르익었다. 군 제대 할 때 유승호는 “행복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의미를 다시 물었다. “연기는 누군가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잖아요. 그게 삶의 힘이 될 수도 있고요. 내 연기와 작품이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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