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이라는 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네서점이라는 말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그렇다고 동네서점과 낭만을 연결하고 싶지는 않다. 낭만이라는 단어에서는 군내가 난다. 아아, 모든 것이 지금보다 작고 따듯하고 진정성 넘치던 시절, 동네서점에 삼삼오오 모여 책을 논하고 사회를 말하고 삶을 나누던 시절, 요즘 사람들은 그런 시절을 모르고 (따라서) 낭만을 몰라,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나. 나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걸 낭만이라는 단어로 한통치고 넘어가는 것은 반대다. 낭만만큼 낡고 속 편한 단어도 없다.
물론 내게도 동네서점을 둘러싼 추억이 있다. 막내 외삼촌이 운영하던 ‘문예서점’의 추억.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상경한 외삼촌은 무작정 서점을 열었고,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17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곳에서 유년 시절의 오후를 보냈다. 여덟 평이나 됐을까. 넓지 않은 서점 구석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따개비 한문숙어’ ‘소라의 봄’ 같은 책들을 몇 시간이고 읽었다.
그러니 내가 첫 직장으로 인터넷 서점을 선택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고민이나 방황 같은 것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는데, 정작 일을 시작하고 나니 고민과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책을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었다. 과연 책은 넘치게 받아 볼 수 있었다. 내 담당 분야 신간만 서른 권이 넘는 날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서점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형서점에서 16년을 일한 베테랑 서점원 하라다 마유미는 그 많은 책을 어떻게 파악하고 판매하냐는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보고, 목차를 확인하고, 키워드에 주목해서 선 채로, 또는 걸으면서 30초 정도 본문을 읽는다고. 감탄하는 저자에게 그녀는 이어 말한다. 담당 분야가 있는 서점원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가끔 그렇게 해도 좋은 건지 생각한다고. 자꾸 뭔가 나쁜 짓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도대체 누구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걸까.
“글쎄요. 책에 대해서일까요? 단지 책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요.”
결국 그녀는 대형서점을 그만두고 다섯 평짜리 동네서점 ‘히구라시 문고’를 차린다. 더는 나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책만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동네서점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막연한 특별함은 그런 것이었다. 말하자면 책을 단지 상품이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다루는 장소, 책이라는 가치와 책이라는 문화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탐방서점’이라는 기획을 통해 최근 주목받는 소규모 서점의 주인들을 인터뷰한 후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넓지 않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선별된 책의 종류와 그것을 진열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처럼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성격과 가치관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중에는 동네서점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문화 꼰대’들의 참견에 충분히 시달렸는지 딱 잘라 “서점도 자영업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내 생각은 낭만 운운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동네서점이라는 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만, 특별함의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행사가 끝난 후 저마다의 특별함을 실현하는 동네서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매달 월세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는 이마저도 속 편한 생각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 전에 온라인 서점 이용부터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금정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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