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45) FC서울 감독은 21일 중국 장쑤 쑤닝으로 갑작스럽게 팀을 옮기며 구단에 “더 크고 새로운 무대에서 도전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곱씹어 보면 조금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중국 진출이 ‘도전’이라니. 하지만 그게 프로축구 K리그의 현실이다. 중국 슈퍼리그에는 명장과 특급 스타가 즐비하다. 장쑤에도 최전방 공격수 조(29)와 리버풀이 눈독을 들였던 알렉스 테세이라(26), 첼시 출신의 미드필더 하미레스(29) 등 브라질 전ㆍ현직 국가대표가 뛰고 있다. 3명 몸값만 1,000억 원이 넘는다. 이런 상황이면 도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현재 슈퍼리그에는 이장수(60) 창춘 야타이, 장외룡(57) 충칭 리판, 박태하(48) 옌볜 푸더, 홍명보(47) 항저우 그린타운 감독 등 4명의 한국인 사령탑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들 4명과 최용수 감독의 중국 입성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장수, 장외룡 감독은 오랜 기간 ‘야인’이었다. 박태하 감독은 K리그에 좀처럼 사령탑 자리가 나지 않아 중국으로 선회했다. 홍명보 감독은 재기의 무대로 중국을 택했다. 반면 최용수 감독은 K리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지도자였다. 앞날이 창창한 차세대 기수였다.
그가 받는 대우도 이전 감독들과 차원이 다르다.
최 감독 연봉은 350만 달러(40억 원), 각종 수당 등을 합치면 500만 달러(5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K리그 감독 중 최고 연봉자가 7억~8억 원, 보통 2억~5억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다.
사실 장쑤는 얼마 전 최강희(57) 전북 현대 감독에게도 연봉 500만 달러에 제안을 했다. 또 베이징 궈안이 연봉 200만 달러(23억 원)에 황선홍(48) 감독에게 관심을 보였다. 재벌을 모기업으로 둔 중국 구단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한국인 사령탑에게는 물불을 안 가리고 베팅 한다. 중국 소식에 밝은 에이전트는 “한국 감독들은 선수들이 규율을 잘 따르도록 지도하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점을 중국 구단들이 높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최용수 감독의 경우 작년에 장쑤 러브콜을 거절할 때 모습도 큰 호감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감독은 지난해 여름 장쑤로부터 연봉 20억 원에 사령탑 제안을 받고 고심한 적이 있다. 한 소식통은 “그 정도 연봉이면 어지간한 감독은 앞뒤 보지 않고 달려들었을 거다. 하지만 최 감독은 중심을 잘 잡았다. 돈만 좇지 않는 태도에 장쑤 구단도 적지 않게 놀랐다”라고 귀띔했다.
사실 작년 장쑤가 최용수 감독 영입에 목을 맬 때 구단 내부에서도 “저 정도 연봉이면 유럽, 남미 명장을 데려오지 왜 한국인 감독이냐”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 감독이 안 가고 장쑤는 루마니아 출신 명장 단 페트레스쿠 감독과 계약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시 최용수 감독이 적임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독소조항 문제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구단들은 감독과 계약서에 6개월 단위로 구단이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연패가 길어지면 일방적으로 경질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는다. 이 경우 잔여 연봉의 30~50%만 지급한다는 옵션도 포함된다. 유럽, 남미 출신 명장도 예외가 없다. 최 감독은 작년에 독소조항을 없애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이번에는 상당 부분 최 감독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전언이다. 실제 최 감독의 한 측근은 “작년에 발목 잡은 걸림돌(독소조항)이 올해는 없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최 감독이 최소 1년 6개월은 소신 있게 팀을 끌고 갈 수 있도록 보장받았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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