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의 라운드 도중 다소 어이 없는 일을 겪었다. 파3홀에서 핀까지 150m 거리를 보고 치라는 캐디의 조언을 받고 티샷에 나선 동반자 2명의 볼이 그린을 훌쩍 넘어 OB(아웃 오브바운즈)가 됐다. 2명 모두 핸디가 10 수준의 골퍼였기에 클럽 선택의 실수는 아니었다.
세번째 티샷에 나선 동반자가 자신의 거리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핀까리 거리가 130m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후에도 캐디는 거리측정기 측정 결과와 10~20m씩 차이가 나게 거리를 알려줬고 퍼팅 라인 역시 알려준 경사와 반대로 휘어지기도 했다. 이 캐디는 결국 5번홀에서 자신의 캐디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최근 캐디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의 초보 캐디들이 필드에 나서고 있다. 전국 대부분 골프장이 캐디피를 12만원으로 인상했지만 오히려 캐디의 수준은 하락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인 캐디(caddie)는 16세기 영국 에덴버러 지방의 ‘포터’(짐꾼)들을 ‘캐디(caddie)’라고 부른 말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군인들이 골프를 칠 때 젊은 장교들이 보조를 하게 되면서 젊은 장교를 부르는 말인 ‘cadet’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의 캐디는 골퍼를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조언과 판단을 함께 하는 길잡이 같은 존재다. 거리와 코스의 특징, 공략지점 등을 설명해주고, 퍼팅 라인도 봐준다. 카트를 운전하고, 골프채를 가져다 주고, 잃어버린 볼을 찾는 궂은 일도 한다. 그래서 골프에 대한 실전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없으면 일하기 어렵다.
물론 거리와 퍼팅 라인을 보는 것은 골퍼 스스로의 몫이다. 캐디가 거리를 알려줬더라도 골퍼 스스로 야디지북을 체크하거나 티잉그라운드에 적혀있는 거리표지판 등을 통해 거리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거나,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골퍼들에게 캐디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교육이 부족한 초보 캐디들이 홀로 나서는 이유는 캐디 부족 현상 외에 골프장의 수익 때문이다. 캐디가 꼭 고객 편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다. 골프장 입장에선 오히려 경기진행을 빨리 해 회전율을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캐디다. 실제로 진행이 느릴 경우 캐디는 고객들에게 빠른 플레이를 독촉하는 ‘마샬’노릇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일부 골프장의 경우 캐디 부족 해결책으로 노캐디나 캐디 선택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골프장은 골프장 수익증대를 위해 여전히 캐디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캐디가 없다고 캐디피를 올리고, 수준 미달의 캐디를 필드로 내보낼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만 캐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골프소비자모임이 2013년 온ㆍ오프라인으로 37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87.5%인 329명이 캐디 선택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최근 골프산업 침체로 골프장의 경영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차례라도 함량 미달의 초보 캐디들로 인해 라운드 기분을 망친 경험이 있다면 해당 골프장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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