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22일
김명순(金明淳, 1896~1951)은 1920년대 활동한 한국 근대문학 1세대 작가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소설 공모에 단편 ‘疑心(의심)의 少女(소녀)’가 당선되어 데뷔했다.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 심사를 했는데, 춘원이 특히 그의 작품을 격찬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명순 단편집’(송명희 엮음, 지식을만드는사람들)에 수록된 ‘의심의 소녀’는 평양 대동강변의 한 마을에 사는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여쁜” 범네라는 8,9세 소녀의 이야기다. 외할아버지와 식모와 함께 사는 범네는 동네 아이들과 거의 어울리지 못한 채 집에 갇혀 살다시피 하고, 어른들 역시 이웃들과 거의 교류를 않는다. 이런저런 소문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그들을 찾는 듯한 한 신사가 마을에 나타나고 소녀 일가는 황급히 마을을 떠난다. 소설은 마을 이장의 입을 통해 범네 일가의 비밀이 밝혀지며 끝이 난다. 재산가인 외할아버지 황진사는 금지옥엽 키운 딸이 바람둥이 남자에게 시집간 뒤 남편의 홀대와 첩들의 핍박에 마음을 다쳐 자살하자 외손녀를 빼돌려 직접 돌보아왔다는 이야기.
“사랑을 원하야도 엇지 못하고 자유를 원하야도 엇지 못하고 이별을 청하야도 안 드러 의심받고 학대밧고 갓치여 비관하든 남저지에(나머지) 평양의 별장에서 자살하였다. 길바닥에 인마의 발에 밟힌 일흠 없는 적은 풀까지 꽃피는 사월 모일에 인세의 꽃일 24세 젊은 부인은 단도로써 자처하였다. 가련한 부인의 설은 죽음(… 또) 하시에나 표랑객인 가련한 가희(佳姬ㆍ범네)에게는 춘양여일(春陽麗日)이 도라올는지.” 이설이 있지만, 김명순은 평양 관료의 서녀(어머니는 기생 ‘산월’)로 태어났다고 한다.진명여학교를 거쳐 18세에 일본 유학을 했고,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고보를 졸업했고, 20년대 창조 폐허 등 잡지 동인으로 활동하며, 86편의 시와 22편 소설, 수필ㆍ평론 20편, 희곡 2편을 쓰고 번역했다.
그는 가부장사회의 여성 인권에 민감했던 페미니스트였다. 자유 연애를 신봉했 실천했다. 20대 초 일본서 강간을 당하기도 했던 그는 내도록 남성 사회의 험담과 모욕 등 언어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김기진, 염상섭, 김동인, 전영택 등이 그에게 공개적으로 가한 비난과 인신공격은 위 책을 엮은 송명희의 해설과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의 글에 얼마간 소개돼 있다. 가난과 질병을 앓던 그는 행려병자로 도쿄 아오야마 뇌병원(靑山腦病院)에 입원, 51년 6월 22일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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