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백지화 다음날
박 대통령 "계속 추진돼야"
문재인도 대선 앞두고 약속
영남권서 반대 땐 배신자 취급
대선주자들, 김해공항 확장 등
대안 제시 못하고 갈등 부추겨
이명박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한 다음날인 2011년 3월 31일 오전 11시. 당시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은 대구 달성군 자신의 지역구에서 열린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 취임식 직전 기자들과 만나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없다지만 미래엔 분명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신공항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없던 일로 만든 신공항이 하루 만에 부활한 순간이었다. 이듬해인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는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영남권 표심을 의식해 ‘죽은 신공항’을 살려냈다는 지적을 두 대선 후보 앞에 내놓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월 당선자 신분으로 부산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지역 민심이 신공항 건설을 희망한다는 제의에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고 약속했다. 영남권 신공항의 역사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임기 후반에 공식 검토를 지시했고, 1년 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검토 필요성이 있다는 1단계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2007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영남권 신공항을 꺼냈다. 당선 이후에는 국토연구원에 2차 용역을 발주해 국책사업으로 선정했다. 국가균형발전위에서 신공항을 30대 광역 선도 프로젝트로 뽑았고(2008년 9월), 2009년 4월 국토연구원은 신공항 5개 후보지를 발표했다. 그 뒤 최종적으로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여당의 텃밭인 대구와 부산이 신공항 유치 경쟁 도시로 갈라지면서 국론 분열은 극에 달했다. 결국 2011년 이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했지만, 현 정부는 5년 뒤 그 전철을 고스란히 되밟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국토부를 통해 신공항 건설을 재추진한다고 발표했고, 그해 8월 국토부는 '영남지역 항공수요조사연구 용역결과'를 공개하며 김해공항의 포화로 신공항의 수요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지역 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막고자 지난해 1월 영남권 5개 단체장이 모인 가운데 유치경쟁을 자제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합의정신을 바탕으로 지난해 6월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했다. 하지만 ADPi는 이날 가덕도와 밀양이 아닌 ‘김해공항 확장’이란 제3의 선택을 발표했다.
그 동안 영남권 신공항이 너무 뜨거운 이슈가 되면서 영남 정치권에선 신공항 반대나 김해공항 확장을 주장하면 '변절자'나 '배신자'가 되는 분위기가 계속 됐다. 여야 유력 대권 주자군이나 다선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 김해공항 확장 등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는 이유다. 자칫 잘못 말을 했다간 텃밭의 표심이 모두 날아갈 판이었다. 그러다 4ㆍ13총선을 보름 앞둔 3월 29일 대구 달서병이 지역구인 조원진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박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화근이 돼 밀양신공항 내정설이 회자하기 시작했다. ADPi의 발표가 임박해선 부산 정치권이 "가덕 신공항이 아니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영남권'으로 묶여 불리지만 대구와 부산은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기점으로 ‘남보다 더한 남이 됐다’고 현지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정치권은 신공항 사업의 타당성보다 신공항 표심의 유불리만 생각해 '같이 살자'가 아닌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경쟁을 부추겼고 민심을 갈기갈기 쪼개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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