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거론 한진해운ㆍ현대상선ㆍ롯데 등 당혹
재계 “경제 살리기 역행 처사
오너일가 경영 수업 역차별 우려”
시민단체는 “개혁 기구 꾸려야” 반색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재벌 개혁’에 대한 강도 높은 국회 연설에 대해 20일 재계에선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가뜩이나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까지 인기를 의식해 대기업을 범죄집단 취급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재벌 개혁 기구를 꾸려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반색했다.
정 대표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경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추진해야 할 과제로 재벌 개혁을 꼽자 재계는 잔뜩 긴장했다. 정 대표가 실명을 거론한 한진해운 현대상선 롯데그룹 등은 자율협약과 검찰수사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하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 대표는 이들을 생태계 균형을 깨뜨린 외래 어종 ‘배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ㆍ3세들이 편법 상속과 불법 경영권 세습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소 주요 정치권 인사의 국회 연설 시 환영 논평 등을 내 놨던 재계 단체들은 이날 침묵을 지켰다. 한 경제단체의 임원은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한 얘기를 경제단체에서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A기업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명목 아래 대기업 규제가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큰 상황에서 일부 기업 사례를 마치 대기업 전반의 문제처럼 몰아붙여 비판하면 기업의 부담만 키울 뿐”이라고 말했다. B기업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에 대한 감시가 대폭 강화한 만큼 개별 기업의 위법 사항에 대해선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C기업 관계자는 “지금 모두 힘을 쏟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여당 원내대표로서 좀 더 신중한 발언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재벌 2ㆍ3세의 경영권 세습을 지목한 것에 대해선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D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엔 능력만 있으면 30대도 임원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대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편견이 큰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오너 일가가 책임 경영을 하거나 경영 수업을 받는 것까지도 역차별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재계와는 달리 시민단체와 학자 등은 정 대표의 연설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여당 원내대표가 한 말인 만큼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확산됐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추가 입법을 하지 않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검찰 등 감독ㆍ사법 기관들이 현행법을 대기업에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벌 개혁 기구 신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여야정과 시민단체, 전문가가 참여해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재벌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근본적 해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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