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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의 ‘반란’… “노인이 아니라 전해라”

입력
2016.06.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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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ㆍ헌신은 옛말…욕구충족 등 개인 삶 충실

노화 거부하는 ‘아이증후군’ 일 수도… 시니어 문화 절실

‘시니어벤저스’, ‘할미넴’ 등 시니어 신드롬이 일고 있다. 젊은 세대와 소통도 좋지만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시니어들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시니어벤저스’, ‘할미넴’ 등 시니어 신드롬이 일고 있다. 젊은 세대와 소통도 좋지만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시니어들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시대 시니어들의 모습을 적확히 묘사한 TV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등장하는 고령 주인공들은 젊은이들에게 “너희도 늙어보라”고 대놓고 말한다. 이들은 내 자식, 내 손주밖에 모르는 소통 불가능한 꼰대가 아닌 살아 있는 어르신들이다. 젊은이처럼 감정을 분출하고, 연애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을 ‘시니어벤저스(시니어+어벤저스)’라 부른다. ‘할미넴’이란 말도 있다. 미국 레퍼 에미넴과 할머니의 합성어로 평균 65세인 어르신들이 종편 프로그램에서 힙합에 도전해 큰 인기를 얻어 생겼다.

건강한 육체가 만든 시니어 신드롬

‘시니어 신드롬’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신건강 전문의들은 “시니어 반란이 육체ㆍ정신적으로 건강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60대라도 지속적으로 건강관리를 한 이들은 40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신적으로도 노인이길 거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보험사 은퇴연구소가 60세 이상을 조사한 결과, “75세를 넘어야 노인”이라고 답한 비율이 20%나 됐다. 법정기준인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7.7%에 불과했다. 정년퇴직 후 여행 등 취미생활을 즐기며 보내고 있는 K(62)씨는 “자식이나 손주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몰라도 누가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어색하고 싫다”면서 “직장에서 은퇴했지만 체력이나 정신적으로 40~50대에 밀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이에 맞는 발달과정 거부현상?

전문의들은 최근 불고 있는 시니어 신드롬을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 혜화동 대학로 개방 초기, 무조건 술을 마시고 난동부리는 걸 자유라고 여겼던 것처럼 시니어 신드롬도 과도기적 현상”이라면서 “지금은 연예인,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부 시니어그룹이 문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세대가 바뀌면 보편 타당하고 더 현실적인 시니어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노년기에 수행해야 할 ‘발달과정’을 거부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년기에 접어들면 ‘자아통합’을 통해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한다. 하지만 경제와 의료기술 발전으로 수명이 연장돼 육체ㆍ정신적으로 젊은이 같은 노인이 증가하면서 내적 충만보다 외적 호기심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청년시절 할리데이비슨을 모는 것이 꿈이었던 이가 있다. 65세가 된 그는 청년시절의 꿈을 이루려고 주위 반대에도 불구하고 할리데이비슨을 구입했다. 처음 오토바이를 탔을 때는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한참 타면 삭신이 쑤신다. 한번은 신호정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오토바이가 전복될 뻔했지만 그는 그저 “운이 나빴다”고 여겼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노인들이 자신의 나이에 맞는 발달과정을 거부하는 것을 일종의 ‘아이증후군’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은 “미디어, 인터넷 등에서 나이 들어도 젊게 살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어쩌면 영원한 아이증후군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젊은이 흉내 내는 것은 각자 선택이지만 아무리 애써도 늙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가족해체의 단면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국희 한림대동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아내와 함께 혹은 혼자 사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가족 틀에서 아버지ㆍ어머니 역할에 충실해야 했지만 자식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욕구충족에 몰두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노인 중에는 주말이면 구두 옷 가방 등 명품을 뽐내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브런치 정도는 즐겨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면서 “젊어 보이려고 피부관리는 물론 성형까지 마다하지 않는 등 아낌없이 돈 쓸 수 있는 노인이 돼도 자식에게 대접받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청년처럼 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세속적 소망에 집착하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젊음에 집착할수록 헛된 욕구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바니타스(Vanitas)’의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니어 신드롬이 자칫 잘못하면 노인 간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 교수는 “최근 불고 있는 시니어 문화는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면서 “빈곤한 노인 중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데 심하면 분노반응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시니어벤저스 등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연결고리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전무한 시니어 문화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임현국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에 시니어 문화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다”면서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은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시니어벤저스 등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 우리 노인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라면서 “낙후된 동네 노인정, 경로당 등을 노인들이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마음드림의원 원장)은 “젊은이 중심으로 문화와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사회적으로 열등생이자 골칫덩어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시니어벤저스 등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완충장치도 좋지만 젊은이에게 존경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어르신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품위 있는 인생 후반기 조건]

1.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새로운 사고에 대해 개방적이며 신체건강의 한계 내에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려 한다.

2. 노년의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한다.

3.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 할 일을 자율적으로 해결하며 주체적이어야 한다.

4. 유머감각을 갖고 놀이를 통해 삶을 즐긴다.

5. 과거를 돌아볼 줄 알고 과거 성과를 소중한 재산으로 삼는다.

6. 오래된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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