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ㆍDJㆍJP 등 정권창출 위해 내각제 개헌 지지했지만 유야무야
노무현ㆍMB 정권 개헌 시도도 국회ㆍ차기주자와 조율 없어 무위
정치권ㆍ시민사회 초당적 기구 구성, 권력구조 넘어 총체적 논의 필요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불거진 개헌론이 과거 정권의 실패를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는 개헌의 본래 목적은 보이지 않고, 대다수 정치인들이 여전히 정치적 유ㆍ불리로만 사안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학계에선 이번 기회에 10년 이상 장기적 개헌 플랜을 짜서 국민과 공감하며 개헌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장기적 접근 없이는 개헌의 키를 쥐고 있는 각 당의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의 교감 역시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 30년은 개헌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다. 멀리 노태우정부에서, 가까이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개헌론은 모두 무위에 그쳤다.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이 각기 ‘차기정권’의 유불리만 따지는 계산대 위에 ‘개헌’을 놓고 재단한 결과였다.
이런 실패의 역사가 20대 국회에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개헌을 언급한 정치적 목표가 뚜렷할수록, 개헌론은 손쉽게 용도 폐기된다는 점이다. 실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 시 내각제 개헌에 합의한 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내각제 추진선언문’에 서명한 것 모두 정권 창출이라는 목표가 눈 앞에 있어 가능했다. 3당 합당 당사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두 정권에 걸쳐 내각제를 밀어붙인 김종필 전 총리도 각자 당권 보장과 정치적 영향력 유지라는 선물이 있어 개헌에 동의했다. 하지만 정권 창출 뒤 합의 당사자들의 각자 정치적 이해관계는 달라졌고, 개헌은 논의의 장 한번 거치지 않고 폐기됐다.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의 개헌 좌절은 “미래권력과의 논의 없이 단기적으로 사안에 접근해도 필패(必敗)”라는 경험을 남겼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중임제’의 원 포인트 개헌 제안은 국회의원 임기가 남은 여야 의원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진행됐다. 이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까지 “차기 정부가 개헌을 추진한다”는 당론을 결정, 개헌을 회피했다. 당시 박근혜 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란 말을 남겼다. 현직 국회의원 입장에서 중임제 개헌의 실익이 없었던 이유다. 공을 넘겨 받은 이 전 대통령의 두 차례 개헌 시도도 당내 합의에 실패했다. 확실한 대권 주자였던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조율 없이 진행된 개헌 시도는 국민들에게 ‘개헌 논의=계파 싸움’이란 부정적 이미지만 남긴 채 유야무야 됐다.
반복된 개헌 실패의 역사는 이번에 당론 변경까지는 아니지만, 여야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이끌어내고 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개헌을 장기적으로 접근해 헌법 발효시기를 10년 후인 2027년으로 해야 한다”며 “10년 후 누가 대권 잠룡으로 성장할 지 예측할 수 없으니 (정치적 영향력에서) 개헌 논의가 보다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도 장기적 접근을 해결책 중 하나로 고려하는 분위기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20대 개원 이후, 현재 언급되는 남경필 경기지사 등 차기 대권주자는 물론, 차차기로 예상되는 후보군 모두가 시점을 초월해 개헌의 방향성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헌법학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정치권의 변화를 주문했다. 10년 이상 시간을 전제로, 정치권이 시민사회 등과 폭넓은 논의를 해야만 개헌이 성공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개헌까지 10년이 걸린 스웨덴보다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갈등 수준이 더 높다”며 “개헌 논의를 시작하되 시점을 못박지 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반과 총체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호 경희대 교수도 “특정 정파를 떠난 초당적인 개헌 기구를 만들어, 그 틀 안에서 미래권력과 시민 모두가 장기적으로 헌법을 논의해야 ‘한국형’ 개헌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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