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교체와 편집위원 총 사퇴로 내홍을 겪었던 계간 실천문학이 여름호를 발간했다. 시론과 비평이 빠지고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와 시인들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사퇴한 편집위원들은 다른 문인들과 함께 대책위를 구성해 사측에 계간 실천문학 방향에 대한 논의를 요구할 방침이나 갈등의 골이 깊어 사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1일 열린 실천문학 주주총회에서는 김남일 대표를 비롯한 문인 주주들이 물러나고 신임 대표에 이영진 시인, 이사에 윤한용씨, 공광규 시인이 지명됐다. 김원, 김정한, 김종훈, 서영인, 장성규, 황인찬 등 전 편집위원 6인은 이에 반발해 총사퇴하며 성명서를 통해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오직 ‘주식 표 대결’로 (실천문학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상황”이라고 규탄하며 “소수 대주주들에 의해 독점된 회사운영과 계간지 편집 구조에 대해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구성된 대책위는 새 이사진이 계간 실천문학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잡지를 협동조합의 형태로 전환해 회사와 분리하는 방안 등을 사측에 제안할 계획이다. 대책위 간사를 맡은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새 이사진은 계간 실천문학이 마치 경영부실의 원인인 것처럼 얘기하며 반년간 무크지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한국문학의 큰 손실”이라며 “36년 전 계간 실천문학이 독립잡지로 출발했던 것처럼 젊은 문인들에게 운영을 맡기든지 해서 정체성을 이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편집위원들이 사퇴함으로써 사측에 면담을 제안할 명분이 없어 다른 문인들과 함께 대책위를 꾸리게 된 것”이라며 “한국문학의 공공영역이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영진 대표는 “이사진 교체는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며 계간 ‘실천문학’의 방향성이 훼손될 위험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전 편집위원들이) 실천문학의 공공적 성격에 대해 말하는데 주식회사에 무슨 공공성이 있나”고 반문하며 “나를 비롯해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실천문학 초기부터 참여했던 사람들로, 오히려 전 편집위원들이 더 실천문학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여름호에 비평, 담론이 빠진 것에 대해선 “회사 경영을 맡고 보니 인쇄소에서 책 출고가 안될 정도로 부채가 많았고 그걸 해결하다 보니 실천문학 출신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을 받아 잡지를 꾸렸다”며 “비평이나 담론보다는 20년 간 원고 청탁 한 번 못 받은 이들의 글을 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통일 담론 등 문학 바깥의 주제로 담론의 영역을 확장하고 젊은 작가 중심의 또 다른 계간지를 창간해 경영위기를 극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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